천식 환자이자 인후통을 달고 사는 나로선 코로나가 우한폐렴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2월이 시작될 때부터 수업을 쉬고 아이와 나를 지켰다.
“3월부터는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을 거야.”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사상 초유의 전국 개학 연기라니! 내 평생에 전염병으로 인해 이런 전시와 같은 상황을 겪어보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정말 현실이 되었고, 아들과 나는 늘 소망하던 대로 “한 달만 꼼짝도 안 하고 집에서만 있어 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처음엔 좋았다. 처음엔.
아들과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출산 직후 몸조리를 하던 2달간 이후 아들은 늘 누군가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져야 했고, 나는 아들을 맡기고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에게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차라리 기뻤다.
태생이 집돌이인 아들과 역마살을 게으름으로 눌러버린 나는 정말 현관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모든 음식은 일체 배달과 배송에 의지하며 살았다. 그렇게 한 달을 집에서 신나게 놀았다.
한 달쯤 지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을 너무 놀리기만 한 것이 불안하고, 내가 너무 놀기만 해서 비어버린 통장이 불안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숙제로 주었더니 아들이 엄마는 잔인하고 심술궂다고 일기에 썼다.
“야! 이렇게 한 달간 놀리기만 하는 엄마가 어디 흔한 줄 알아? 다른 엄마들은 훨씬 더 많이 시킬 거야!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랬더니 아들의 일기 내용이 좀 달라졌다.
길어진 방학으로 엄마는 괴수가 되었는데, 방학은 또 2주나 연장되었단다. 엄마도 좌절이다. 이렇게 방콕 하다간 코로나19가 덮치기 전에 정신질환이 먼저 덮치겠다. 아끼고 아꼈던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공원으로 출동했다. 태풍 같은 바람 속에서 연을 날리며 빠른 일상의 복귀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