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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an 28. 2020

하늘이 내린 용심


나의 시어머니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용심을 가지신 분이다. 시어머니 용심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던데 정말 하늘이 내린 능력이 아니고서야 그 밑도 끝도 없는 용심을 설명할 길이 없다. 너무나 많은 사연이 있었고 하나같이 다 아프고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시어머니가 내 연애사에 정말 집요할 정도로 집착을 보였다는 거다.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을 살다가 난데없이 정말 훅 치고 들어오듯 이렇게 물어댔다.

“너 우리 00이 만나기 전에 남자 없었니?”

처음에 그 질문을 받았을 때는 정말 어리석은 양반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에 수백, 수천 명의 남자를 만났다 한들 본인이 이제 와서 뭘 어쩌려고 저런 질문을 하나 싶었다. 그래서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그런 걸 왜 물으시냐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게 시도 때도 없이 수없이 계속 받게 될 질문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시어머니가 나의 연애사에 더 집착을 보인 것은 기묘하게도 아이를 낳고 난 후였다.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돼서 남편은 사업을 하다 실패를 했고 수 억의 빚만 떠안게 되었다. 결혼 후 생활비를 줄 때보다 안 줄 때가 더 많았고, 오히려 돈을 가져갈 때가 많았다. 당연히 나는 아이를 낳고도 바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를 시어머니한테 맡겼다. 생후 6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맡겼으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학대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더 이상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봐주면서 잊을만하면 나의 과거 남자에 대해 수시로 물었다.

“너 정말 남자 없었니?”

시어머니가 세모눈을 하고 입가에는 조롱기 가득한 묘한 웃음을 매달고 내 과거의 남자관계를 물어댈 때마다 나는 내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더 격렬하게 관계를 맺지 않은 것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고작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 시어머니가 될 줄 알았다면, 그때 그 남자와 잤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와의 뜨거운 밤을 몰래 추억하며 시어머니한테 앙갚음하는 마음이라도 느꼈을 텐데... 어렸던 나는 혼전순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마음에 있던 그 남자를 거절했다. 그 거절을 저런 어리석은 노인네 때문에 후회하게 될 줄이야. 분했다.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시어머니가 원하는 대답을 내가 시원스레 해주지 않아서인지 그분은 또 상상도 못 할 용심을 부리며 괴이한 말씀을 하셨다. 아이가 서너 살쯤인가 난데없이 나한테 정말 남자가 없었냐고 묻더니 갑자기 아이를 향해 말했다.

“00아, 너 엄마가 남자랑 전화 통화 하나 안 하나 잘 감시하고 있다가 엄마가 남자랑 통화하면 얼른 할머니한테 와서 다 일러야 한다.”

하.... 나는 이 세상 언어로 나의 심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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