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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Mar 17. 2020

코로나 19로 인해 임시학교를 개교합니다.

조삼모사 작전으로 자유를 빙자한 학교에 아이를 가두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이다. 시간은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정기적으로 따박따박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직업이 아니므로 마음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작년까지 수업이 너무 많아 쉴 틈도 없고 내 아이를 돌볼 틈도 없었던지라 올해는 수업을 좀 줄이고 아이를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좀 줄이고...’라고 생각했는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2월부터 수업을 ‘모두’ 쉬게 되었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장 잔고는 ‘0’에 수렴하고 있다. 통장 잔액과 나의 불안감은 반비례한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으며 쉬는 건 쉬는 게 아니다.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차라리 무언가 바쁘게 일을 만들어 불안을 잊어야 한다. 그래서 학교를 세웠다.

 학생은 아들 한 명뿐이지만. 돈도 못 벌고 있으면서 시간까지 버리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본격 홈스쿨링이다. 그냥 공부하라고 하면 괴수 엄마가 되니 나름 치밀한 작전을 짜야한다.


1. 입학식

“정말 뭔가 시작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칠판 앞에 아이를 앉혀두고 개학을 할 때까지 엄마가 선생님이 되어 임시 학교를 세울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어서 학교에 아무도 없는 밤에 학교를 폭파시켜버리겠다는 아들이니 학교라는 말에 비명을 질렀다.


2. 자유로운 학교

 그래서 이 학교는 네가 다니던 학교와 많이 다르다며 아이를 안심시켜야 했다.

“이 학교는 아주 ‘자유로운 학교’야. 학교 이름,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시간표, 공부할 과목을 네가 직접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라며 ‘자유’에 강조에 강조를 더했다. 아이에게 자유를 준다고 꼬드기며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도록 만들고, 실상은 엄마의 자유를 찾는 것이 진짜 목적이다.

(하핫. 과연 성공할 것인가? - -a)


3. 아이가 스스로 만드는 시간표

 우리 아들은 수업시간 30분, 쉬는 시간 15분으로 정했다. 하지만 정해진 공부가 빨리 끝나면 더 일찍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고, 놀다가 재미있으면 쉬는 시간을 30분으로 늘리기도 했다. 어차피 하루 4과목 2시간 공부가 목표니 쉬는 시간을 한 시간으로 늘려도 놀만큼 놀고 나서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했다. 아이가 원하는 시간으로 알람만 맞춰두면 된다. 그러니 아이가 놀아도 나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아이는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정하는 조삼모사의 시간 분배가 아이와 나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니!


4. 아이가 정하는 과목

 과목은 날마다 해야 하는 과목과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만 하면 되는 과목으로 나누고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날마다 해야 하는 과목은 영어와 수학 숙제.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은 국어, 과학, 사회 등 EBS 강좌 듣기, 논술, 역사, 책 읽고 독후 포트폴리오 작성하기, 원하는 책 마음껏 읽기다. 원하는 과목을 원하는 순서로 아이가 직접 정하도록 했다.  

 그 외에도 과목을 아이가 스스로 더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요리, 동화책 만들기, 역사신문 만들기, 공룡백과 만들기, 과학책 보고 실험 따라 하기 등을 하자며 나보다 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마구 만들어 냈다. 역시 아이의 상상과 창조를 머리가 굳은 나는 따라가지 못한다.


5. 확실한 보상

 스스로 정한 시간표대로 스스로 잘 지키면, 끝나고 아이가 원하는 것으로 확실한 보상을 해주었다. 남은 시간에 종일 놀고 싶다고 하면 놀도록 하거나, 게임 시간을 늘려주거나,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하거나, 공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놀기 등이다.


날씨가 화창하면 공부할 것을 싸가지고 집 근처 공원에서 하기도 했다.


 지난 3월 5일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집에서 공부하고 있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시키고 있을까? 아이가 슬슬 지겨워하면 다른 엄마들이 찾은 공부나 놀이 방법을 접목해서 새로운 과목을 추가해봐야겠다.

 2달 같은 2주가 지났는데, 개학은 또 2주나 연기되었다고 좀 전에 발표를 했단다. 나에겐 아마도 2달 같은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남은 시간 동안 빈 통장을 보며 또 얼마나 길고 긴 한숨을 쉬어야 할까.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니 엄살도 못 부리겠다. 나만 맞고 있는 인생의 폭풍우도 아니니 이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빗속에서 어떤 춤을 춰야 할지, 어떻게 즐겁게 춰야 할지 짱구나 굴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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