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안 답답해?”
“어!”
“엄마는 집이 너무 좁아서 답답해. 밖으로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니까 너무 답답하고 막 화가 나려고 해.”
“난 우리 집 좁아서 좋은데? 아늑하잖아.”
“아! 우리 아들은 마법사구나.”
“내가? 왜?”
“이렇게 좁고 답답한 집도 말 한마디로 아늑한 집으로 바꿔주니까. 아들이 아늑하다고 하니까 정말 아늑한 집으로 변신한 것 같아. 우리 아늑한 거실에서 책이나 볼까?”
“응. 좋아!”
우리 집은 좁다. 실평수가 11평이나 될까? 집도 너무 좁은데 창을 열어도 바로 옆 빌라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싫다. 죽어라 열심히 돈을 벌어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갚고 조금이라도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나의 꿈이다. 그런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발목이 잡혀 돈도 못 벌고 이 좁고 답답한 곳에 갇혀 옥살이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울했다.
코로나가 우한 폐렴이라고 불릴 때 더 강력하게 막지 못한 정부를 욕하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스스로 당당하게 밝히지도 못할 종교를 믿는답시고 몹쓸 전염병만 전파한 신천지를 욕하고, 이렇게 좁은 집에 갇혀야 하는 내 팔자를 욕하고, 이 와중에도 생활비를 걱정하게 만드는 남편의 쥐꼬리 벌이를 욕했다. 그렇게 내 마음을 꾸깃꾸깃 구겨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좁은 집을 아늑하다고 말해주는 고마운 아들의 마음을 듣고 나니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신 것 같다. 마음이 구겨진 것도 잊고 또 열심히 책을 읽어 줄 힘을 아들이 만들어준다.
아들이 요즘 빠져있는 책은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다. 제법 두꺼운 책인데 1권인 고대 편을 다 읽고 지금은 2권인 중세 편의 뒷부분을 읽고 있다. 다른 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특히 이 책을 읽을 때의 아들은 참 바쁘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지도를 보면서 책에 나오는 나라와 도시를 찾아보기도 하고, 종이와 연필을 가져와서 무언가를 막 그리기도 하고,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역할극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가 읽어주는 걸 듣고 있는 건가 싶어 내용을 물어봤는데 제법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듣고 있었다. 대체 책을 읽다 말고 뭘 그리는 건가 싶어 봤더니, 역사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을 더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책 속에서 성벽이 나오면 성벽을 그리면서 몬스터 캐릭터가 전쟁을 하는 만화를 그리는 식이다.
오늘 읽은 부분은 ‘포르투갈의 항해왕 엔리케’ 이야기다. 기독교 국가인 포르투갈이 북아프리카의 어느 이슬람 무역도시를 점령하자 이슬람 사람들은 그 도시에 발길을 끊었고 엔리케 왕자는 차라리 인도와 직접 교역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항법 학교를 세우고 최신식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엔리케의 선원들이 낯선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아들은 특히 눈을 반짝였다.
곳곳에 소용돌이가 있고 무서운 바다 괴물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신비로운 암흑의 바다를 향해 가는 선원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멀리 남쪽 바다에는 태양이 너무 뜨거워 바닷물이 펄펄 끓고 있어 선원들은 산채로 삶아질까 봐 두려웠다는 부분에서 아들의 상상력도 함께 펄펄 끓었다. 갑자기 종이를 가지고 오더니 무언가를 한참 동안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 얘네는 선원들이 바다에서 만난 괴물들이야. 얘는 이름이 키라켄이야... 얘는 팔을 이렇게 펄럭 펄럭 움직이면서 이동하는데... 얘는 새끼를 어떻게 낳냐면....”
아들은 앉은자리에서 뚝딱 바다 괴물들의 이야기를 지어내 십 분이 넘도록 종알종알 들려주었다. 꽤나 자세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역시 타고난 이야기꾼인가 보다.
“엄마, 여기 발아래 점처럼 보이는 건 점이 아니야. 그건 귀신고래야. 그러니까 얘가 얼마나 큰지 알겠지?”
“우와, 정말 엄청 크다!”
“응. 정말 엄청 커. 그래서 얘는 태평양이 좁아서 다른 행성을 찾아서 떠났어.”
“떠났다고? 어떻게? 우주선 타고?”
“아니, 그냥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모든 팔을 펄럭 펄럭 움직이면서 ‘안녕~’하고 떠났어. 그래서 지구보다 더 큰 행성을 찾아서 아주 잘 살고 있대.”
“하하하하, 펄럭 펄럭 움직이면서 우주를 떠다니는 거야? 재밌었겠다.”
“얘네가 그 행성에서 새끼를 낳아서 또 다른 이야기가 생겨. 재밌겠지?”
“어. 재밌겠다. 다음엔 그 이야기도 책으로 만들어볼까?”
“좋아!”
11평짜리 감옥에 갇혀 어리석게 자기 마음만 구기고 있던 못난 엄마는 오늘도 반성한다. 말 한마디의 마법으로 감옥을 아늑한 집으로 변신시키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북아프리카로 가더니 더 큰 대륙을 찾아 항해를 떠나게 만들고 태평양도 좁다며 우주를 건너 더 큰 행성으로 여행을 시켜준 아들의 무한한 상상력에 큰 감동과 감사를 느낀다.
“아들, 엄마는 우리 아들이랑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게 정말 좋아. 참 행복해. 사랑해.”
“나도 행복해. 사랑해.”
내가 여기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으랴.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내일을 또 기대해본다.
‘아들, 못난 엄마 데리고 노느라 고생했어. 내일도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