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샘 May 08. 2020

어머니, 똥손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손자는 똥손을 원망하지만 말입니다요.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집콕한 지 80일째. 일을 안 하고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만 키우면 일할 때보다는 느긋하게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혀서야 처음으로 일을 쉬고 살림이란 것을 조금 적극적으로 해보았다. 느긋? 여유? 하, 나는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반성한다. 그건 살림을 내던진 워킹맘의 엄청난 착오였다. 종일 집에만 있는데도 책 한 줄을 읽고,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아이 밥 챙기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또 청소하고 저녁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면 하루가 사라져 있었다. 대략 45일 만에 글을 쓰는 건데 대체 45일 동안 뭘 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허무하다. 전업주부들이 하루 종일 그렇게 바빴는데 대체 뭘 한 건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는 이유를, 손 안의 모래처럼 시간이 사라지고 허무함만 남는다고 한 이유를 결혼 12년 차 돼서야 살림이라는 걸 제대로 해보며 공감한다. 대체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달쯤 전의 이 사건만은 잊을 수 없다.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마트와 공원뿐이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며 아이의 머리카락은 덥수룩하게 자란 더벅머리가 되어 있었다. 미용실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큰 맘먹고 가봤다. 아무도 없다. 주인도 없다. 불은 켜져 있는데, 문도 열어두고 어딜 가셨을까? 첫 번째 방문은 실패. 다음 날에도 가보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한다더니 온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은 왜 죄다 미용실에 모여있는 거지? 찜찜하다, 찜찜해. 두 번째 방문도 실패. 그 다음 날 또 가보았다. 이번에도 사람이 많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가위와 스펀지를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 영 맘에 걸린다. 세 번째 방문 마저 실패.


 그러는 사이 머리카락이 아이의 눈을 찌르기 시작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사과머리를 해야 했다.


사과머리를 하면 더 어려보인다


 사과머리를 하면 더 귀여워 보이지만 고무줄이 익숙지 않은 아이는 머리가 아프다며 힘들어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이발에 한 번 도전해볼까?

아이는 기겁을 했다.


“엄마는 똥손이라 안돼!”

“엄마가 한 번 해보고 영 이상하다 싶으면 미용실에 가서 얼른 다시 손보면 되잖아.”

“싫어!”

“에이~ 엄마가 잘해줄게! 한 번 믿어 봐!”


 엄마의 과감한 도전에 아이는 귀여운 레고 머리가 되었다. 반듯한 앞머리 선이 참 가지런히 이쁘게 성공했다.


“아들, 엄마 눈은 왜 까매?”, “엄마가 내 머리를 망치는 범죄를 저질렀잖아. 눈을 가려야지.”, “아!” ㅜㅜ



 거울을 본 아들이 비명을 질렀다. 또 나의 착각이었다. 아들이 내 손을 보며 대화를 시도한다. 내 손이 하나의 인격체가 된 듯하다. 배구공 윌슨과 이야기를 나누다 제 풀에 흥분하여 괴성을 지르던 톰 행크스가 빙의한 듯 하다. 아들이 내 손의 목을 조르며 울부짖었다.


“이 똥손아! 너 때문에 내 스타일이 구겨졌잖아!”


 헉! 차마 엄마에게 욕을 할 수 없으니 엄마의 손에게 욕을 하며 엄마에게 돌려차기를 시도하는 고급 스킬인 것인가?

하...웃으면 안 되는데! 나머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기 어렵다. 상상도 못했던 참신한 앙탈이 귀여워 쿡쿡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다.


인간의 의인화 능력이란! 그래, 너무 괴로워도 너무 외로워도 친구는 필요하지.



 방바닥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찔금거리다 엄마에게 눈을 흘기는 아들을 보니 3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의 엄마도 내 머리카락을 잘라줬다. 망했다. 생뚱하게 올라가 이마의 절반을 드러내는 앞머리를 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바닥에 누워 360도 회전의 발버둥을 시전했다. 그때의 내 엄마도 나처럼 민망하게 웃었다. 처음엔. 그렇게 엄마가 웃으며 그만하라 할 때 그만했어야 했다. 끝까지 악을 쓰며 울다가 결국 엄마한테 혼쭐이 나고서야 ‘엄마 미워!’를 열 번쯤 외치고 소동의 막을 내렸었더랬다.


 그때의 엄마가 미웠던 감정의 기억이 어쩜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아날까? 내 아들도 그때의 나처럼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 엄마가 미울까? 팔짱을 끼고 입을 삐죽거리면서 엄마를 향해 눈을 흘기다 ‘흥!’, ‘칫!’을 연달아 발사하는 아들의 자그마한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다. 그때의 엄마도 내가 사랑스러웠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어제 일도 기억 못 하는 내가 완벽하게 잊었던 어릴 적 추억을 마법처럼 소환하여 촉촉한 감성에 젖도록 하는 것.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나 생각하며 아이를 더 사랑하게 되고, 엄마의 노고에 감사하게 되는 것. 이렇게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것인가 보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엄마에게 사랑을 찐하게 전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1평 감옥에 갇힌 엄마를 우주로 보낸 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