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결혼하기 전에 엄마가 친구분을 만나고 오시더니 혀를 차면서 말씀하셨다.
“엄마 친구가 우울증에 걸렸는데 그 이유가 세상에.. 어이구... 며느리가 엄마 친구한테 미친년이라고 했단다.”
“뭐?!?”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온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미친년이란 소리가 나오냐? 너그들은 다 그러냐? 결혼한 니 친구들도 막 그래?”
“아~니! 나 아는 언니는 시어머니랑 하루에 한 시간씩 전화로 수다 떨면서 엄청 잘 지낸다던데.... ”
“어이구야, 정말 더럽게 못돼 쳐 먹은 걸 며느리로 얻었나 보다.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시어머니한테 대놓고 그렇게 말했대?”
“아니, 엄마 친구가 집에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며느리가 자기 친구랑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래. 그런데 며느리가 지 친구한테 ‘야, 우리 집 미친년 올 시간이다. 끊어.’ 이러더란다.”
“아, 친구한테 그랬다는 거구나.”
“야! 친구한테는 그래도 되냐? 친구한테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넌 나중에 절대 그러지 마!”
엄마와의 대화는 결국 나를 단속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자기 시어머니를 욕하는 친구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어떤 친구가 시어머니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의 불만은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생활비를 보태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시어머니는 어느 건물의 화장실 청소를 하며 근근이 살고 계셨다. 친구들은 남편이랑 네가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지 화장실 청소하며 사는 시어머니한테 돈을 드리지는 못할 망정 왜 돈을 달라고 하냐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되려 욕을 해주었다. 나는 저렇게 철없고 못된 며느리가 되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까지 했더랬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고부갈등은 며느리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는 거라 생각했다. ‘아니, 시어머니든 며느리든 자기들끼리 싸우면 중간에 낀 아들이자 남편만 죽어나는 건데 그런 어리석은 싸움을 왜 하는 거지? 자기들이 사랑하는 한 남자 잘 되라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끼리 대체 왜 싸워?’ 라며 의아해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 전까지 2년 동안 신혼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날마다 시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오늘은 햇살이 참 좋네요. 날씨가 화창해서 어머니 생각이 나서 전화드렸어요.”
“어머니, 오늘은 돈가스 만들어 먹었어요. 오빠가 엄청 잘 먹었어요.”
“어머니, 육개장 끓여먹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해요? 지난번에 어머니가 해주신 거 너무 맛있었는데, 저는 잘 안되네요.”
“어머니, 오늘은....”
어머니는 귀찮으니까 전화 좀 그만하라고 하셨다. 결혼한 지인들도 -심지어 남편마저- 정말 신기한 애라며 시월드는 잘해주면 더 바라니 너무 잘해드리면 안 된다고 걱정을 했다. 나는 유쾌하게 웃어넘기며 “잘해드릴 수 있을 때 잘해드려야지. 나중 걱정하느라 할 수 있을 때도 안 하면 그게 더 어리석은 거 아니야? 가능할 때 미리미리 좋은 관계를 만들어둬야 나중에 위기가 왔을 때 더 잘 극복할 수 있다던데.”라며 당차게 대답했다. 그랬다. 그리고 결국 그 위기는 찾아왔다.
시어머니가 조금씩 베일을 벗어가며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줄 때마다 나는 좋은 관계일 때 만들어 두었던 곶감 꼬치에서 곶감을 빼먹듯 참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씩 빼먹으며 대들고 싶은 마음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가 예전에 맛있는 도시락을 싸주신 적도 있었지.’
‘어머니만큼 아이를 잘 돌봐줄 분이 또 어디 계시겠어.’
‘어머니가 예쁜 옷을 사주신 적도 있었지.’
‘어머니가 손주를 얼마나 이뻐하셔. 내 새끼를 그렇게 이뻐하며 봐줄 사람이 또 어디 있어?’
‘어머니가 오빠 낳아 힘들게 키워주셨으니까 나도 오빠랑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어머니는 항상 나 먼저 밥 먹으라고 아이를 봐주셔. 본인이 시장하셔도 나 먼저 먹이시지.’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은 정말 맛있어.’
‘어머니한테 맞서 싸워봐야 내가 얻는 게 뭐가 있겠어?’
‘어머니 하고 안 좋게 지내면 엄마가 속상해 하시겠지.’
‘어머니한테 아이 맡기는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어.’
................
.........
...
..
.
어느새 꼬치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빈 꼬치를 손에 들고 누구를 찔러야 하나 고민했다. 차마 시어머니를 찌를 수는 없으니 남편을 찌르고 나를 찌르고 그래서 아이도 찔렸다. 시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온 후에는 카카오 스토리에 이런 낙서나 끼적이며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다.
하아~ 내 집, 내 공간이다.
이제 쫓기지 않고
먹고, 자고, 싸고....
숨 쉴 수 있다.
사냥개에 쫓기는
족제비같이 살다오면
날카로운 이빨처럼
날카로운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물어뜯게 된다.
그 날카로운 마음이
가장 잔인하게
물어뜯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애써 만든 곶감 꼬치는 이미 비었는데도 시어머니의 잔소리 폭풍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날은 머릿속에 미친개를 풀어놔야 했다.
왈왈왈왈
니가 한 게 뭐가 있냐
왈왈왈왈
동네 미친개가 또 짖는다고 생각하자
왈왈왈왈
맹구 장가는 언제 보낼 거냐
왈왈왈왈
도련님 장가를 왜 내가 보내지?
아, 미친개가 짖는 소리를 해석하려고 하지 마
왈왈왈왈
너희가 맹구 집을 좀 사줘야 하지 않겠니?
왈왈왈왈
나도 지금 아기 데리고 월세 사는데?
미친개다. 미친개가 짖는다.
왈왈왈왈
나 주름살 없애는 수술 좀 시켜다오
왈왈왈왈
미친개가 짖는 소리에 화를 내서 뭐하냐
왈왈왈왈
너 내 말 듣고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