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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un 05. 2020

아내가 변했다

“얼마나 사신다고 그래. 그냥 네가 이해하면 안 돼?”

“당신이 신이야?”

“뭐?”

“내가 언제까지 살고 죽을지 당신이 맘대로 정해줄 수 있어? 아님 당신이 신을 만나서 나는 두 번 살게 해 주겠다는 확답이라도 받아 왔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당신 부모님보다 오래 살 거라고 당신이 어떻게 확신할 건데? 누구든, 오늘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게 인간사야! 그분들은 한 번 살고 난 두 번 사냐? 20OO년 O월 O일 이 날은 누구에게나 한번뿐이라고! 누군가 참야 한다면 내 집, 내 인생인데 그분들이 참아야지. 왜 나보고 참고 이해하라는 건데!”

‘쿵!’

“이기적인 새끼!”

‘쿵!’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두 대나 연속으로 맞았다. 아내가 변했다.

아내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항상 먼저 알아서 나의 입장과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맞춰주었다. 그런 아내가 변했다.

무엇이 아내를 변하게 한 걸까?

아내는 왜 변했을까?


 엄마는 장남인 나를 결혼시키며 마치 당신이 결혼하는 것처럼 설레어하셨다. 우리가 살 집과 가전부터 한복, 드레스, 결혼반지와 패물을 비롯해 결혼할 장소와 날짜까지 엄마가 하나하나 손수 준비하시며 꼼꼼하게 골라주셨다.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는 생글생글 웃으며 엄마의 의견에 따라주었고 엄마는 만족스러워하셨다. 남들은 결혼 준비를 하며 많이 싸운다는데 그건 단지 남들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하고 순조롭게 결혼했다. 이 순탄한 평화는 번거롭고 복잡한 모든 일들을 엄마가 대신해주셨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수더분하게 엄마의 생각을 경청하고 어른의 말씀을 따를 줄 아는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아내가 변했다.


“그만큼 당신들 뜻대로 좌지우지했으면 됐잖아! 뭘 얼마나 더 참고 이해해야 하는 건데?”


 생글생글 웃던 아내는 사실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 있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 와서 왜 그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이건 다 그놈의 마리아상 때문이다. 어느 날 아내는 거실 TV장 한쪽에 마리아 상과 십자가 상을 놓아야겠다고 했다. 엄마는 불교신자다. 우리 집 곳곳에 부적을 갖다 두는 엄마가 마리아상과 십자가를 보고 불편해하실 게 뻔했다.


“엄마가 뭐라고 하실 걸.”


 단지 걱정이 되어 한 말인데, 아내는 갑자기 표정이 굳더니 말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냉랭한 표정으로 묻는 말에도 대꾸가 없다. 그러더니 나보고 ‘이기적인 새끼’란다. 엄마가 불편해하실 거라면 늘 순탄하게 맞춰주던 아내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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