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샘 Feb 07. 2020

시월드의 눈치도 염치도 없는 맹구들

시어머니가 왜 맹구 장가 안 보내주냐고, 맹구 집은 사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던 그 맹구는 시동생이다.

남편의 남동생.

어찌나 사랑받고 자라셨는지 나랑 동갑인데 하는 짓은 초딩도 아닌 유딩이다. 그야말로 유치원생 마냥 천진난만하다.

내가 서른두 살에 결혼을 하고 시월드의 ‘참신한 부당함’에 계속 놀라고 있을 때, 저 맹구 때문에도 만만찮게 놀랐다. 그는 남편을 ‘엉아’라고 불렀다. 서른이 넘은 남자가 그 굵은 목소리를 위태로울 정도로 가늘게 만들어 혀 짧은 소리까지 보태 엉아를 찾아대는 꼴이 나에겐 참 ‘민망한 역겨움’이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저럴라나 싶어 웃으며 제지시켰다.

“도련님, 나중에 조카 생기면 조카 앞에서도 그렇게 혀 짧은 소리로 ‘엉아, 엉아,’ 하고 찾아다닐 거예요? 그럼 나는 엄청 놀려줄 건데.”

눈치가 더럽게 없는 맹구가 그 말을 알아들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시어머니의 코치로 맹구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엉아’를 찾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 없는 맹구의 더 큰 망나니짓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

친정아버지가 결혼기념일이니 가까운데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30만 원을 주셨다. 마침 결혼기념일이 일요일이라 근교로 놀러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 받아서 잠깐 통화를 하더니 말했다.

“어, 잠깐. 바꿔 줄게.”

“누군데? 왜 나를 바꿔?”

“맹군데 오늘 우리 집에 오고 싶다네.”

“근데 왜 나를 바꿔?”

“바꿔달래.”

“네. 저예요. 말씀하세요.”

“형수님, 저 오늘 거기서 하루 자도 돼요?”

“아아, 음... 도련님, 오늘 저희 좀 특별한 날이라 와인 사다 놨거든요.”

“와, 맛있겠다. 같이 마셔요.”

“아아, 음.. 도련님, 와인 잔이 ‘두 개’에요.”

“괜찮아요. 전 맥주잔으로 마실게요.”

‘야이 새끼야, 내가 괜찮지 않아!’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이를 악 물었다.


그날 밤 맹구는 기어이 우리 집에 왔다. 같이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다가 내가 물었다.

“도련님, 그런데 오늘 왜 온 거예요?”

“아빠가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못 보게 해서 여기서 보려고요.”

‘아, 정말 저 새끼를 죽여야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맹구가 죽일 이유를 하나 더 보탰다.

“엄마가 오늘 두 분 결혼기념일이라고 절대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전화하면 오라고 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나 잘했죠’라는 표정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처럼 해맑은 눈빛을 반짝이는 저 강아지 새끼를 오늘 죽이고 내일 뉴스에 나올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면 잠도 줄여가며 화물차를 끌어 번 돈으로 딸과 사위가 결혼 기념 여행을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실 친정아버지가 그 뉴스를 보실 텐데... 저 강아지를 죽이는 건 포기하자.’

대신 남편을 방으로 끌고 들어가 말했다.


“오빠, 내가 오빠한테 쿠폰을 하나 만들어 줄게. ‘결혼기념일을 미룰 수 있는 쿠폰’이야. 오늘은... 하.... 그래... 흠... 아무래도 내가 ....휴....아무튼 오빠가 원하는 날짜로 결혼기념일을 미룰 수 있어.”

“고마워.”

남편 어깨에 있지도 않은 먼지를 탁탁 털어주며 말했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서로 묵은 감정이 없도록,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응? 잘 준비할 수 있겠지?

남편의 눈빛이 비장하다. 남편이 군기가 바짝 든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비장한 눈빛으로 응수했다.

”자기야, 우리 잘해보자.”


하지만 시월드의 맹구는 하나가 아니었다.




이전 09화 아내 입에 물린 재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