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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Feb 07. 2020

시월드에서 살아남기, 여자의 적은 정말 여자일까?

시월드의 맹구는 하나가 아니었다. 맹구 2는 남편의 사촌 동생이다.

결혼하고 두 번째 명절이었다. 맹구 2는 혼자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명절 전날부터 큰집인 시가에 와 있었다. 소파에 반쯤 누워 TV를 보고 있던 맹구 2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불러 젖혔다.

“형수! 형수!”

분주하게 하던 일을 멈추고 급하게 거실로 가니 나를 보며 맹구 2가 외쳤다.

“형수! 물!”

차가운 물을 한 바가지 떠다가 얼굴에 끼얹으며

“야이 새끼야! 내가 니 몸종이냐? 네가 떠다가 쳐마셔!”

라고 해주고 싶지만, 맹구 2는 내 동생이 아니었다. 시동생이었다. 뒷 목이 당겨오니 이만 생략해야겠다.


내 동생이었다면 뒤통수를 후려치며 개념을 좀 챙기라고 했을 맹구 2를 다음 명절에 만났다. 시어머니는 앉아보지도 못하고 일을 하고 계시고, 시아버지도 이것저것 차례 도구들을 챙기느라 분주하신 가운데 맹구 2는 여전히 거실 소파에 반쯤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거실에서 송편을 빚으라고 하셔서 송편을 빚고 있었다. 그러다 맹구 2를 보고 말했다.

“도련님도 와서 같이 빚어요.”

“안돼요. 우리 할머니가 남자가 그런 거 하면 불알 떨어진다고 했어요.”

‘에라이 미친놈, 송편 몇 개 빚기 싫어서 돌아가신 할머니까지 소환해 손주 교육 잘못시켰다고 욕을 보이면...니 속이 후련했냐?!’

를 속으로만 외치며 나긋나긋하게 웃음을 한 가득 담아 대답했다. 그는 내 시동생이니까.

“아, 그래요? 이거 빚으면 도련님 불알이 떨어져요? 그럼 재밌는 구경거리 생기겠네. 어디 송편이 더 큰가, 도련님 불알이 더 큰가 비교해보게 빨리 와서 같이 빚어요.”

시부모님도 빵 터지셔서 껄껄 웃으며 같이 빚으라고 하셨고, 맹구 2는 사색이 되었다.


그 이후로 명절이 되어도 맹구 2는 큰 집에 오지 않았다. 대신 맹구 2는 명절 며칠 전에 나를 포함한 시가의 사촌들을 단톡 방으로 불러들였다.

맹구 2: 명절 다음날 저녁에 강남에 모여서 술 먹자. 어른들 계시면 술 마시기 좀 불편하니까 밖에서 만나자.
사촌 시누: 명절 다음날이면 언니네는 친정에 인사드리러 가 계시지.
맹구 2: 형수, 그냥 친정 가지 마요.
사촌 시누: 너 미쳤냐?
나: 그날 이 방에 계신 분들 할아버지 제사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와서 제사나 지내요.

맹구 2에게 미쳤냐고 했던 사촌 시누 역시 만만치 않은 시월드에서 고생을 하고 있던 처지였다.


시월드의 맹구 3는 남편의 사촌 형인 시아주버님이다. 시어머니 언니의 아들.

결혼을 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시어머니가 당신의 언니한테 인사를 해야 한다며 우리를 그 집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시어머니께서 당신 언니네 가족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주니 맹구 3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형제분이 셋이에요. 세 자매. 세 분 다 내 시어머니다 생각하고 잘 모셔요.”

그러자 맹구 3의 여동생이자 나에게는 사촌 시누이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오빠, 미쳤어? 시어머니가 하나만 있어도 끔찍한데 세 명을 시어머니라고 생각하라고?”

그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알지? 저 오빠가 시어머니를 안 겪어봐서 몰라서 저래. 그냥 헛소리 하는구나 생각하고 무시해버려.”

그 시누이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월드를 몸소 체험 중이었다. 시어머니의 언니인 큰 이모님도 나를 보며 말씀을 보태셨다.

“그래, 그건 얘 말이 맞아. 시집살이는 부당한 게 많아. 너도 시댁 어른들 어렵다고 무조건 참지 말고 이건 아니다 싶은 건 꼭 말해야 한다.”


여자의 적은 정말 여자일까? 내가 경험한 바로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앞에서 구경한 맹구들처럼 남자가 적일 때도 있고 나는 ‘말리는 시누이’들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시월드 경험치를 사려 깊은 배려로 교환할 수 있었던 그녀들의 지혜를 닮고 싶었다. 시이모님의 말씀처럼 나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고치려 했다.

하지만 ‘시월드에서 살아남기’ 게임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내가 시어머니에게 바른말을 하면 시어머니는 ‘네 까짓게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 내가 왜 너 따위의 눈치를 봐야 하냐’는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기꺼이 나의 적이 되셨다. 더불어 ‘시어머니의 오기’라는 아이템을 획득하고, 심술 버전을 업그레이드시켜 ‘시월드에서 살아남기’ 게임의 난이도만 높아질 뿐이었다.


나는 이 게임의 만렙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 게임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까?

나도 시누이들처럼 시월드 경험치를 현명하고 사려 깊은 배려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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