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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Feb 09. 2020

맹구 3의 헛소리가 예언이 되다


 아이가 유치원생 무렵, 내가 이름 모를 병에 걸린 적이 있었다. 동네 병원 세 군데를 돌아도 원인을 모르겠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보라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듣도 보도 못한 그 병은 일종의 피부 감기와 같으며 면역력이 약해지면 생기는 거라 했다. 시어머니는 아주 용한 한약방을 친구분에게 소개받았다며 가보자고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찾아갔다. 용하다는 한의사는 내 맥을 짚어보고 안경 너머로 나를 뚫어져라 한참을 보더니 말했다.

“왜 젖 먹던 힘까지 쓴다는 말이 있지요? 지금 이 사람은 그 젖 먹던 힘까지 다 쓰고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기운을 밑바닥까지 다 긁어 썼고만요. 보통 이렇게 되면 쓰러집니다. 병이 나도 크게 나지요. 이 사람은 사람이 쓸 수 있는 모든 기운을 다 쓰고 지금 인품으로 버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시어머니를 보면서 말하지?’

 한의사의 시선은 분명히 시어머니에게 꽂혀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시어머니를 봤더니 똥 씹은 얼굴이다. 한의사는 호통을 치듯 말했다.

“약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 사람은 좀 쉬어야 합니다. 약은 먹고 싶으면 먹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고. 반드시 쉬어야 해요.”

한의원에서 나오자마자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말했다.

“야! 돌팔이다!”

“아니, 어머니가 정말 용한 곳이라면서 데리고 왔잖아요. 그런데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야, 시간 없다. 빨리 가자.”

시어머니는 입장이 난처하면 화제를 급히 바꾸셨다. 경험상 괜히 또 심술 버전이 업그레이드되기 전에 바뀌는 화제에 맞춰주는 것이 차라리 속이 편했다.


 그때도 여전히 (사실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내가 돈을 벌어야 우리 세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었다. 신랑은 생활비를 보태줄 수 없고 나는 당연히 일을 쉴 수 없다. 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 없다는 긴장감이 간신히 나를 버티게 했다. 하지만 며칠간 수업을 쉬어도 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명절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몸살이 났다. 열이 40도가 넘었다. 아프다고 명절 준비를 면제해주는 시월드가 아니었으므로 해열제를 먹어가며 간신히 전을 부쳤다. 남편은 들어가서 좀 자라고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심술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기운을 눈빛과 말투로 팍팍 풍기고 있었다.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도 없었고 명절 당일 친정부모님은 시골에 가신다고 오지 말라고 하셨다. 차례가 끝나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나는 좀 누워서 자려고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잠깐 외출하시더니 작은 이모님과 함께 들어오셨다. 시어머니의 여동생인 작은 이모님은 들어오면서부터 큰 소리를 지르며 입장했다.

“야! 너 아프다며! 어디가 얼마나 아프길래 며느리가 차례 준비가 게으른가 좀 보자!”

남편이 대답했다.

“이모, 얘 진짜 아파. 열이 40도가 넘어.”

“아무리 아파도 며느리가 할 도리는 해야지. 야이 팔불출 같은 놈아, 너도 그러는 거 아니야. 니가 왜 나서서 니 마누라만 감싸고도냐!”

맹구 3의 그 헛소리는 예언이 된 것이다. 시어머니가 하나가 아니었다. 남편은 짐을 싸더니 집에 가자고 했다.

며느리의 도리를 운운하는 그분의 가치관에 따르자면 그분은 출가외인인데 왜 시집간 언니네 집에 와서 패악을 부리는 것인지, 딸도 있는 양반이 나중에 당신 딸도 그런 꼴을 당할까 봐 두렵지도 않은지. 내 머리로는 당최 이해할 수 없으나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럴 기운도 없었고 스트레스를 받아봐야 나만 더 아플 것 같았다.

그 이후에도 내가 아파서 밥도 못 먹고 누워있는 날은 시어머니의 용심이 더 치솟아 하늘을 찔렀다. 당신 아들들이 먹은 빈 그릇을 보며 나한테 왜 설거지를 안 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부리셨다. 나는 진통제를 먹고 설거지를 한 후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분명 이 길을 가지 말라는 신호가 있었다. 반백수 상태로 사업을 준비 중이던 남편과 내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말렸다. 예비 시가에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가자  남편의 팬티까지 다림질을 해서 입히라 했던 시어머니가 결혼 준비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나에게 제사를 떠넘기려다 실패했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한 뒤였다. 꽤 현실적인 한 친구는 기겁을 하며 결혼식장에서 내 멱살을 끌고 나와서라도 이 결혼을 말리겠다고 했다. 연애한다고 해서 기특하다 했더니 어디서 그런 걸 물어왔냐며 당장 공무원을 소개해줄 테니 괜히 고생하지 말고 더 나은 조건의 결혼을 하라고 조언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시어머니가 패악을 부릴 때마다 나는 그 친구를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가 말리기 전에 이미 청첩장을 돌렸고 무엇보다 나는 이 남자를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시월드에서 살아남기” 게임에 스스로 입장하는 선택을 했고, 내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시간은 길고 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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