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다가오면 그녀의 잔소리를 추억하며 염불 같은 랩을 읊조린다
“엄마, 이 김치는 친할머니 김치야, 외할머니 김치야?”
“왜?”
“그냥. 궁금해서.”
“네가 맞춰 봐.”
“외할머니.”
“어떻게 알았어?”
“맛이 없어.”
“큭.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래.”
시어머니의 김치를 먹어보기 전까지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김치를 가장 맛있게 만드는 사람인 줄 알았다. 도시락 반찬으로 싸간 엄마의 김치는 늘 인기였다. 친구들은 자기가 싸온 김치는 안 먹고 꼭 내 도시락 통의 김치를 먼저 바닥나게 했다. 그렇게 맛있던 우리 엄마 김치가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의 김치를 먹어본 후 맛을 잃었다. 신기했다. 결혼하고 잃어버린 것은 엄마의 김치 맛뿐이 아니었다. 남편도 나도 일자리를 잃었고 그 덕에 아이를 셋은 낳고 싶다는 꿈도 잃었다. 나는 바로 새 일자리를 찾았지만 남편은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본인이 직접 일자리를 만들려 했다. 나는 남편 대신 계획에 없던 가장이 되었다.
그 후 몸이 힘들어서인지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혹은 둘 다 인지 그토록 기다리는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난임 검사와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빠듯한 우리 살림에는 그것도 사치였다. 매달 반복되는 희망고문에 지쳐 아기는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쯤. 몇 년 만에 겨우 임신을 했는데 바로 유산했다. 다행히 다시 힘들게 아기를 가졌다. 그런데 입덧은 아기를 갖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침도 삼키지 못하고 계속 구토를 해서 하루에 한 번씩 병원에서 영양주사를 맞아야 했다. 먹은 것도 없이 계속 그러다보면 처음에는 노란색 위액이 나오다 나중에는 초록색 쓸개즙이 나오고 나중에는 거무죽죽한 것을 토해낸다. 의사 말로는 식도와 위가 다 상해서 피를 토하는 것이라 했다. 하, 인간은 정말 피를 토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입덧으로 반시체가 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호출을 하셨다. 시가에 가보니 가스레인지 위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가 있었다. 물도 못 삼키던 내가 신기하게 그 김치찌개는 들어갔다. 냄비를 벅벅 긁어가며 남은 찌개를 다 퍼먹었다. 시어머니는 왜 먹던걸 먹냐며 새로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다. 팔팔 끓는 멸치육수에 새콤하게 익은 김치와 비계도 살점도 두둑한 생고기를 썰어 넣고 생강즙 한 티스푼으로 맛을 낸 김치찌개는 정말 둘이 먹다 하나가 염라대왕을 만나러 간다 해도 인사조차 못할 정도로 맛있다.
그 맛난 김치찌개는 오로지 김치 덕분이다. 만드는 과정도 재료도 엄마나 시어머니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때깔도 맛도 참 달랐다. 엄마의 김치는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라면 시어머니의 김치는 빨갛게 반짝거리며 톡 쏘는 독특한 김치의 향이 코와 눈을 먼저 자극하여 입안 한 가득 침부터 고이게 하는 맛이다. 나는 시어머니 김치의 그 톡 쏘는 맛이 참 좋다. 나도 그 맛을 꼭 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김장 날이 되면 시키지 않아도 당연하게 와서 거들었다. 통장을 탈탈 털어 김장 수고비를 드리고 허리가 부러져라 김장하는 것을 거든 대가로 일 년 동안 먹을 김치를 김치냉장고에 꽉 채웠다.
냉장고를 꽉 채운 김치는 일 년 동안 요술을 부렸다. 밥을 먹을 때마다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기본 반찬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김치를 숭숭 썰어 넣고 차가운 물과 부침가루를 넣어 슥슥 저은 후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휘휘 둘러 부쳐내면 바삭바삭 맛있게 매콤한 김치 부침개가 나른하고 심심한 일요일 오후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국멸치를 우려낸 물에 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부글부글 끓여낸 후 냉동실에 살얼음이 동동 떠다니게 얼려두면 소면만 쫄깃하게 끓여내 김치말이 국수를 뚝딱 만들어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 수 있다. 새콤한 맛이 나도록 잘 익은 김치는 꽁치, 고등어, 참치, 삼겹살, 등갈비 등 뭐든 넣고 푹 끓여내기만 하면 고슬고슬 갓 지은 밥을 순식간에 도둑질하는 김치찜이 된다. 김치를 잘게 썰어 꼭 짠 후 으깬 두부와 다진 고기를 넣고 후추를 살살 뿌려 섞은 소를 얇은 만두피에 넣고 만들어 쪄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한 접시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건 일도 아니다. 한 소쿠리 가득 만든 만두를 냉동실에 두었다가 사골국과 함께 끓여낸 뜨끈한 떡만둣국도 맛나고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내도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맛있다.
시어머니 김치의 절정은 김장할 때 막 버무린 양념과 함께 먹는 수육이다. 배추를 씻고 재료를 다듬는 동안 된장, 월계수 잎, 통후추, 통마늘, 생강 등과 함께 넣고 돼지고기를 푹 끓인다. 잘 익은 수육 한 덩이를 꺼내 숭덩숭덩 썰어 막 버무린 김치 양념을 한 젓가락 얹고 노랗고 하얀 배추 속살 잎에 싸 먹는 그 맛은. 캬~! 소주 한 잔이 절로 당긴다.
이렇게 맛있는 시어머니의 김치 맛을 배우겠다는 열정에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끼얹은 것은 동갑내기 시동생이었다. 아니 시동생과 나를 대놓고 차별하는 시어머니였다. 내가 늦도록 일을 하고 자정이 되어 퇴근한 후 조각 잠을 자고 일어나 피곤한 몸으로 김장을 도우러 가면 시동생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꾹꾹 참으며 백만 스물두 번째쯤 될 것 같은 배추를 양념에 버무릴 때였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시동생이 방문을 세차게 열고 나오며 말했다.
“아! 너무 자서 허리가 아프네. 이제 게임이나 해야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뭣이라?!
나는 일하느라 허리가 부러질 지경인데 저 녀석은 왜 허리가 아프도록 자는 거지?
그리고 이제 게임을 하겠다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참고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 게임은 나중에 하고 여기 할 일 많으니까 와서 같이 해요.”
그러자 시어머니가 신속하게 도련님을 지키는 보호막이 되었다.
“걔가 하긴 뭘 하냐! 쟤 먹을 밥이나 얼렁 차려 주고 그냥 들어가서 더 자게 둬라.”
아니, 왜? 음식 해두면 가장 많이 퍼먹는 게 누군데?
그리고 지가 먹을 밥은 지가 찾아 먹어야지.
내가 지금 일하다 말고 퍼질러 자고 일어난 시동생 밥 차려주게 생겼는가?
뭐지? 며느리는 막 부려먹어도 되는 거고 아들은 귀하다는 건가?
나의 이런 속마음이 어쩌면 눈빛으로,
어쩌면 미간의 주름으로,
어쩌면 온도를 떨어뜨린 말투로 시어머니에게 전달되었을까?
시어머니는 자진모리장단으로 잔소리를 몰기 시작하더니 휘모리장단으로 절정을 찍으며 내 속을 발랑 뒤집어 놓으셨다.
“니가 대체 하는 게 뭐가 있냐?
너 요즘 니 신랑 밥은 잘 차려주고 있는 거냐?
여자가 놀면 못 쓴다. 한시도 쉼 없이 부지런해야지.
내 친구 며느리는 지 남편이 집에서 놀아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밥해놓고 일나간다.
여자는 그래야 해. 슈퍼우먼이 돼서 살림도 빠지는 거 하나 없이 해놓고 일나가라.”
시어머니는 맛있는 김치를 먹여 나를 홀리고 자신의 아들들을 위한 종살이를 시키려는 것이다.
요술을 부리던 시어머니의 김치는 세상 요망한 것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저 요망한 김치에 홀려 인생을 종치는 수가 있다.
아, 정신을 차리기 위해 나는 홀로 염불 같은 랩을 하며 뒤집힌 속을 달랬다.
멸치 같은 남편은 코치를 해줘도 듣지를 않치
염치없는 시동생은 빌어먹을 골치
독가시치 시어머니 독설은 극치
Ye~!
i don’t need you. i don’t like you.
파렴치한 시월드는 볼만한 경치
망치로 명치를 맞은 며느리는 시금치도 싫치
갈 곳 잃은 길치인 내 마음만 홀로 센치
Ye~!
i don’t need you. i don’t like you.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렇게 담가온 김치는 또 우리 집 냉장고에서 일 년 동안 요술을 부렸다.
김치 콩나물국이 되고, 김치전이 되고, 김치만두가 되고, 김치찜이 되고, 김치찌개가 되고, 김치볶음밥이 되어
뒤집힌 나의 속을 진정시키고, 입 짧은 아이와 남편이 밥투정 안 하고 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게 했다.
그렇게 조금씩 요술을 부리며 사라진 김치가 이제 딱 한 통 남았다.
마지막 한 통을 아껴 먹으며 다가오는 김장철을 두려워한다.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추억하며 또 염불 같은 랩을 읊조린다.
그녀가 준 수치를 잊으면 안 되지
그녀의 막말 대잔치를 잊으면 안 되지
하지만 난 돼지
눈치 없이 맛있는 시어머니 김치
내 세 치 혀는 구박을 잊은 백치
Ye~!
i need you. i like you.
그놈의 김치.
시어머니 김치는 마녀의 초콜릿 집이다.
절대 홀려서는 안 된다.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이번 김장에도 나를 소환하는 주문을 욀 것이다.
“와라~ 와라~ 까불지 말고 와라~!
담가라~ 담가라~ 까불지 말고 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