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봐도 부당한 엄마의 요구는 집요했다. 엄마의 논리에 따르면 내 아내는 엄마의 며느리고 그래서 엄마가 명령하는 모든 요구에 조건 없이, 군말 없이 따라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쁜 며느리고, 나쁜 년이며, 사돈 댁에서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논리다. 장인어른, 장모님이 엄마처럼 그렇게 나한테 요구하면 나도 그래야 하냐면 그건 아니란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내가 엄마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하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나도 그런 부당함에 고통당한 적이 있다. 군대에서였다. 병장에게 그게 왜 부당한 일인지 따지기라도 하면 ‘얼차려’라는 이름으로 맞았다. 나는 정말 많이 맞았다. 맞으면서 이를 악 물었다. 내가 병장만 돼봐라. 그렇게 맞으면서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병장이 되었다. 나는 그 더러운 전통을 깨버렸다. 병장이라며 누리는 모든 특혜를 없앴다. 병장이라고 늦잠을 잘 수 없고 다 함께 해야 하는 힘든 일에서 면제시키지 않았다. 다른 사병들과 똑같이 했다. 내 바로 아랫 기수는 나를 욕했다. 하지만 여기는 군대다. 병장인 내가 까라면 까는 거다. 이제 병장이라는 특혜는 없다. 내가 제대하고 사라지면 또 그 더러운 전통이 생기겠지만 달라지는 것이 있다. 분명 있다. 내가 병장으로 있는 동안 까마득히 아래의 기수들은 나보다는 편하고 덜 부당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내가 나간 이후로 다시 누군가 그 더러운 짓을 한다면 이제 아래 기수 병사들 중 누군가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단 2년의 부당함을 참는 시간이 내겐 참 길고도 험했다. 그런데 아내는 10년이다. 나였어도 몇 번이나 뒤집어 엎고 싶었을 텐데 아내는 참 무던히도 참았구나 싶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내가 엄마의 부조리에 대해 분노하자 되려 아내는 나를 나무랐다.
“당신이 그러니까 어머니가 더 억울해하시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 봐. 어머니가 나한테 그 부당함을 그렇게 파워 당당하게 시킬 수 있다는 건 어머니가 그런 부당함을 고스란히 당하고 견뎌내는 삶을 살았다는 거잖아.”
“엄마가 억울한 시집살이를 당하고 살았다고 너한테도 부당한 시집살이를 시켜도 되는 건 아니지.”
“그렇지. 어머니가 나한테 그래도 되는 건 아니지만, 그걸 당신 아들한테 듣고 싶지는 않으시겠지. 어머니가 누구 때문에 그걸 참았겠어? 그 시대의 여자는 이혼을 하는 게 아니라 시집에서 소박을 맞는 거라 쫓겨나면 갈 곳도 없었겠지만, 그렇게 쫓겨나지 않으려고 한 건 당신의 자식들을 지키기 위한 마음도 있었을 거라고. 그런데 어머님이 평생 그 부당함을 견딜 때 오빠가 어머니를 위해 나서서 싸워준 적이 있어?”
“아니.”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부당함을 참고 결혼생활을 유지하셨을 텐데 그렇게 키워낸 아들이 결혼하니까 아내 편만 들면서 어머니를 공격하면 어머니가 그래 너 옳다 아이고 장하다 하시겠어?”
“아!”
“어쨌든 오빠는 어머니의 고통을 먹고 자란 사람이야. 어머니에게 칼을 들이밀 수는 없다고. 오빠가 결혼하기 전에 어머니가 고통당하는걸 보고 미리미리 치워뒀다면 모를까.”
“그렇다고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하는 걸 내가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잖아.”
“그렇지. 그냥 눈감고만 있으면 오빠는 나를 잃겠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나도 힘들지만 중간에 낀 오빠도 참 힘들겠다.”
“어, 진짜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생각을 해봐야겠어.”
“나도 같이 고민해볼게. 어떻게 해야 어머니들 세대가 우리를 지켜내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들은 지켜내면서 우리의 삶을 지켜낼지. 우리 다음 세대는 그런 부당함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 건지. 아직 해결책을 못 찾았어. 확실한 건 이거 하나야. 아무튼 우리는 그분들의 고통으로 자랐고 배울 수 있었어. 그러니까 우리가 방법을 찾아내야 해.”
아내 말이 맞다.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엄마와 아내를 지킬 수 있는 방법. 우선 엄마가 아내에게 실수를 하고 아내의 입장이 난처하게 만드는 일들을 차단하기 위해 내가 직접 엄마와 연락했다. 그렇게 균형을 맞춰나가는 듯했다. 물론 나의 착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