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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ul 01. 2020

마녀의 숲

“어머니는 참 뜬금없는 잔소리를 갑자기 하셔서 어느 대목에서 어느 주제의 잔소리를 하실지 종잡을 수가 없어. 오늘은 또 어떤 기상천외한 말씀으로 나를 놀라게 하실까?”

“......”

“자기가 분명 재갈을 빼라고 했다. 나중에 나 원망하지 마. 난 이제 하고 싶은 말, 속에 담아 두지 않을 거야.”

“그러십시오.”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식구들끼리 식사를 하러 하는 가는 길이었다. 아내는 벌써 스트레스를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나는 대꾸 없이 출발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나 엄마의 푸념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뭐 이런 곳을 잡았냐!”

“왜요. 여기 맛있다고 소문나서 사람 많은 건데.”

“뭐가 맛있냐! 먹을만한 게 하나도 없다. 야! 너는 아버님 생신이면 니가 상을 차려서 대접해야지. 언제까지 밖에서만 사 먹을 거냐!”


불똥이 아내에게 튀었다. 말없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던 아내의 표정이 굳는다. 내가 얼른 선수를 치며 대답했다.


“얘도 매일 일하느라 바쁜데 무슨 생일상이에요! 그냥 나와서 맛있는 거 먹으면 되지. 좋은 날 엄마는 또 왜 그러시는 건데요?”


 그 뒤 엄마는 별말씀이 없었지만, 아내는 더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표정이 굳은 아내의 입으로 먹을 것을 연신 넣어주었지만 거부한다.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음식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대체 엄마는 왜 저러시는 걸까? 답답한 노릇이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모여 케이크와 과일을 먹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또 아내를 보며 말씀하셨다.


“야! 너는 어디 가서 절대 시댁 욕하지 마라!”


아, 아내가 말하던 우리 엄마의 밑도 끝도 없는 잔소리라는 건 바로 이거구나. 아내보다 내가 먼저 대꾸했다.


“아니,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친정 식구들이나 니 친구들 만나서도 시부모나 시댁 식구들 욕하지 말라고!”

“엄마가 욕먹을 짓을 안 하면 되지. 욕할까 봐 걱정은 돼요?”

“뭐 이 자식아!”


식당에서 보다는 태연한 표정으로 과일을 먹고 있던 아내가 대답했다.


“어머니, 그냥 어머니도 친구분들 만나서 며느리 흉을 보세요.”

“뭐?”

“제가 육아 문제에 있어서 아무리 어머니 입장에서 편의를 봐드리려고 해도 손주 보시면서 불편하고 힘든 점이 있으실 거 아니에요. 며느리 흉보고 싶을 때도 있으실 테고. 그럴 땐 어머니 친구분들이랑 마음껏 흉보시면서 스트레스 푸세요. 어머니도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엄한 곳에서 스트레스 풀려고 하지 않으시죠. 그리고 제 스트레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것까지 어머니께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아내다운 선긋기다. 아내가 그은 선 안으로 미처 다 튀지 못한 불똥은 나에게로 왔다.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엄마는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말씀하셨다.


“야 이놈아! 욕먹을 짓을 하지 마? 내가 욕먹을 짓 한 게 뭐가 있냐! 기껏 힘들게 키워서 장가보내 놨더니 지 마누라 치마폭에 쌓여서 지 엄마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알지. 지 새끼까지 대신 키우느라 뼈 빠져라 고생하는 엄마한테 그게 할 소리냐!”

“엄마가 먼저 이상한 이야길 했잖아요. 며느리가 돈 벌어서 해마다 비싼 음식 사드리면 됐지. 뭘 그렇게 고생해서 직접 상 차리기까지 바래요 바라길.”

“며느리가 그럼 그것도 못하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나는 지금까지 장인어른 장모님 생신에 엄마 며느리처럼 비싼 음식 사드리지도 못했어요. 양심 좀 챙기세요!”

“사위랑 며느리랑 같냐?”

“헐! 그럼 달라요?”

“다르지!”

“뭐가 다른데요?”


 아내의 예상이 적중했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대꾸를 하면 대화가 되는 게 아니라 더 화만 내실 거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내의 말과 행동이 맞는데 아내의 편을 들면 엄마는 더 심술궂은 마녀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내 보고 계속 입 다물고 참으면서 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건 옳지 않다. 고부갈등은 중간에서 낀 남편이자 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방법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 결혼을 할 남자들에게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기라도 하던가. 이래도 틀렸다 저래도 틀렸다 하니 대체 나보고 뭘 어쩌란 말인가!


 집에 돌아와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아내는 쉬러 방으로 들어갔고 나도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게임 속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마녀의 숲.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던 마녀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신의 숲을 지키는 게임이다. 사람들에게 쫓기며 뛰어다니는 마녀가 엄마인지 나인지. 손에 도끼를 들고 마녀를 쫓는 사람이 나인지 엄마인지.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


우리는 어떤 숲을 지키고자 이리 쫓겨 다니는 것일까?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며 아름다운 나무를 키워내고 숲을 지킬 수 있긴 한 걸까?



숲을 지키기 위한 싸움인가, 숲을 잃기 위한 싸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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