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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샘 Jun 25. 2020

아내 입에 물린 재갈

내가 정말 이기적인 것일까?

나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리 힘들어도 최선을 다했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내는 결혼을 망설였다. 그냥 연애만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가정을 꾸려야 더 안정적으로 일에도 집중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를 설득했고 아내도 따라주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도 우린 더 힘들었다. 나의 일은 풀리지 않았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고 고마웠다. 빨리 성공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악재가 겹쳤다. 새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던 업체의 지원 부서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 내 월급은 고사하고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친구이자 직원에게도 월급을 줄 수 없어 나의 청약을 깨야만 했다. 그나마 청약을 깬 돈도 다 쓰고 나자 친구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개발하던 프로젝트는 결국 엎어졌다.

 

 내가 사업이 잘 안 풀리는 기미를 보이자 엄마는 열심히 점을 보러 다니셨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아내의 삼재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생긴 일을 왜 아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인지 터무니없는 풀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내는 오히려 어머니가 마음이 힘드셔서 그런가 보다며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했다. 돌아보니 나는 정말 이기적인 새끼구나. 이미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던 아내에게 더 과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었구나.


 

 아내도 나도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내가 주 4일 근무라 주 3일은 아이가 엄마와 보낼 수 있었다. 아내가 집에 있는 날은 나도 좀 더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었다. 밤늦게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내 역시 늦게까지 일하고 와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 있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쌓여있고 거실은 장난감으로 난장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재우고 일어나 치우려다 함께 잠들었을 것이다. 아내도 나도 우린 늘 피곤했다. 살금살금 거실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달그닥 거리는 소리에 아내가 깨서 나왔다.


“왔어?”

“응. 안 자고 왜 일어나?”

“뭐해?”

“설거지.”

“그냥 둬. 내가 내일 할게.”

“아니야. 거의 다 했어. 이것만 하고 잘게.”

“자기도 늦게까지 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그냥 빨리 자.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괜히 애만 더 깨울라.”

“오늘은 뭐 별 일 없었어?”

“매일 똑같지, 뭐. 자긴?”

“나도 그렇지.”

“나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왜 시어머니들은 뭐든 일이 안되면 다 며느리 탓일까?”

“왜? 엄마가 또 뭐라고 하셔?”

“음... 흐흐흐.. 뭐 안 그러신 적이 있었나?”

“뭐라고 하셨는데?”

“그냥 매일 하시는 말씀. 아들 사업이 잘 안 풀려도 며느리 탓이다. 손주가 뭐 쫌만 늦거나 못해도 며느리 탓이다. 당신 집안에 형제들 사이가 안 좋아도 며느리 탓이다. 대체 왜 그러실까?”

“그러게.”

“어쨌든 당신 어머니니까 예의 차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자기한테는 미안하지만 서너 살짜리 아이가 생떼를 써도 저것보다는 덜 하겠다 싶어. 자기 원하는 대로 안되면 땅바닥에 누워 발버둥 치며 ‘엄마 미워! 엄마 때문이야!’라고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아이나 세상사 조금이라도 본인 뜻대로 안 되면 덮어놓고 ‘며느리 미워! 이게 다 며느리 때문이야!’라고 일단 우기고 보는 시어머니나. 대체 뭐가 다른 건지 나한테 설명 좀 해줄래?”

“미안하다. 나도 이해가 안돼서 할 말이 없다.”

“뭐든 다 덮어놓고 며느리 탓이라니! 시월드 사람들은 세상 살기 참 편해. 근데 진짜 문제의 원인이 며느리 잘못이 아니잖아. 그렇게 며느리 탓만 하고 있으면 당장 본인 마음은 편하겠지만 문제 해결은 절대 안 될 거야. 그렇지?”

“그렇지.”

“지우가 왜 다른 아이들처럼 떼를 부리지 않는지 자기 알아?”

“글쎄.”

“내가 안 받아주니까.”

“그래. 넌 아이가 떼쓰는 걸 받아주는 엄마는 아니지. 아무리 떼를 써봐야 소용없다는 걸 지우도 아는 거지.”

“나 이제 어머니의 생떼도 그만 받아줘야 할까 봐. 자긴 어떻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너도 할 말은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해. 엄마가 과하시다 생각할 때는 가만히만 있지 말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씀드려.”
“아, 나도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부모 앞에서는 입에 재갈을 물리는 가정교육을 받았어. 나 정말 이 재갈 빼도 될까?”

“응. 빼서 던져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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