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Jun 02. 2020

아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스물 아니고 마흔] 다섯 번째 이야기

아버지는 네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계모 손에서 자랐다.


계모는 잘해준다고 하였겠지만, 계모의 배에서 막내가 태어났고 아버지는 천덕꾸러기처럼 밀려났다.

먹을 것도 귀하던 시절에 영양제까지 먹고 자란 막내 삼촌에 비해 아버지는 고등학교 입학금을 달라고 흙바닥을 뒹굴고 눈썹을 밀며 시위해야 할 정도로 돌봄 받지 못했다.

젖을 제대로 떼기도 전에 아버지의 생모는 아팠고, 방 고리를 열지 못한 채 갇혀 지내다 돌아가셨다. 고향은 이북, 혈혈단신 신랑을 찾아 내려와 한 많은 인생을 종했다.

늘 배가 고팠던 아버지는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문지방을 넘고 마룻바닥을 기어내려 가 흙을 주워 먹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마음씨 고운 친척 아지매가 가여이 여겨 챙겨주는 밥과 사랑을 주워 먹을 수 있었다.

스무살이 되어서는 무작정 상경하여 중국집에서 숙식하며 배달일을 하였는데, 친척 아지매가 들려준 경찰수험서 한 권을 끄적끄적하다, 덜컥 순경이 되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보부상으로, 전쟁 전에는 팔도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나중에는 재산을 모아 땅도 밭도 사고 장남과 차남을 대학에 보내고 신발 가게를 차려 줄 정도로 자수성가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나랏밥을 먹는 '인재'가 되었다며 유산 상속에서 제외되었다.

훗날 나는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아?"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에는 다 어려웠어. 할아버지는 아들들을 모두 가르치고 싶어 했지만 내가 철이 없어서 정학도 당하고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고. 큰아버지들이 모두 실직을 하거나 살기가 어려웠는데 나만 직장이 있었으니... 그게 당연한 거야."


아버지는 착한 일을 하는 직업이었는데도, 착하게만 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도 가족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했다. 술과 여자에도 절제력이 부족했고, 분노를 억누르는 데에도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이, 많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남들이 모르는 궂은 일을 다했고 가족들이 어려워하고 꺼려하는 일들까지 서슴없이 나서서 해결하였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명확히 두 얼굴로 존재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약하고 선한 어린 아이와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폭군의 모습이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가, 세월이 흐르고 나 자신에게 수없이 물었다. 젊은 나에게 내 삶을 묻지 않고 늙어가는, 망가져가는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삶이 뭐냐고 자주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젊은 날의 나로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늙은 아버지의 삶에 얽매여 다소 후지게 살았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아버지로부터 나는 어떤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대신 고인이 된, 정확히는 시신이 되어 백마를 타고 머나먼 곳으로 영혼이 사라져 갈 때, 나한테서 터져나오는 말을 통해 나는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 아버지... 고마워. 미안해 아버지. 아버지... 미안해... 고마워... 고마워..." 태어나게 해주어, 밥을 먹여주고, 학교를 보내주고, 꿈을 주고, 그리고... 한평생 나를 지켜주어 고마웠다.


아버지의 삶은, 나를 지키기 위한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지켜진 내가 오늘, 또 누군가를 지키며 망부석처럼 살고 있다. 잘 지켜내어, 나도 아버지처럼 내 할 일을 다하고 돌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내 삶의 모습이고, 오늘이다.


작가의 이전글 너의 속눈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