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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Jul 21. 2020

재주가 없어서

[스물 아니고 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

글재주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태어난 지 40년이나 되어서 이런 질문이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묻는다, 나 자신에게. 귀찮아서다. 핑계를 대기 위해서. 왜 안 쓰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뭐라도 내놓아야 하니까. 그런 걸 사람들은 자존심이라고 일컫나.


재주가 있고 없고 가 밥을 빌어먹거나 취미로 무언가를 하는 데에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건 이제 삶은 나보다 훨씬 높은 데에 있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삶이라고 불리는 시간이다. 인생의 시계, 시간이라는 폭과 너비가 얼마만큼인지... 감히 알 수도 말할 수도 없다.


그 시간 속에서 물들어 있는 내게 망망대해 모래알만큼의 재주가 있다, 없다가 뭐가 중할까. 재주가 없던 이가 엉덩이 힘으로 밀고 또 밀어 쓰는 글과 재주가 있던 이가 깨작깨작 가뭄에 콩 나듯 날리는 구름 같은 미사여구, 무엇이 좋은 글이며 읽히는 글일까.


글과 삶의 시간은 무관하지 않다. 시간의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쓰는 글에는 언어를 초월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한낱 언어의 기교를 부려대서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거실에 놓인 작은 화분 하나로도, 유년을 죽음을 우주를 불러오는 그들의 연금술을 무엇으로 당해낼까. 어떤 마법 가루를 썼기에, 그들이 '후'하고 숨을 불어넣으면 아주 먼 곳에서 서랍 속에 묵혀둔 부끄러움과 미련스러움 그리고 아련함이 단번에 밀려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겪은 시간에 대한 자세일 것이다. 시간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겉치레를 걷어내고, 자존심을 태워버리고, 변명이나 그럴듯해 보이는 장막을 걷어내는 그들의 언어는 시간을 시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기록이다. 그 시간이 오로지 자신만이 소유한 물질도 정신도 아님을 아는 이들의 기록.



솔직하자면 나는 글을 써서 그 흔한 선풍기 한 대도 부상으로 받은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에 열리는 백일장마다 참가했지만 내 손으로 쓴 글로 예선조차 통과해본 적이 없다. 같은 반 부반장이 꼬박꼬박 시도 대회, 전국 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것과는 달리 말이다. 생각난다. 그 부반장, 두꺼운 안경알 때문에 눈이 둥글둥글 미로처럼 헤매는 것처럼 보이던 그 녀석. <노인과 바다>로 일약, 전국대회를 휩쓸었던 그 신모 양.

딱 한 번, 조회대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에야 밝히지만 그것은 대필작이었다. 사생대회와 함께 열리던 글쓰기 대회에서 시간에 쫓겨 엄마가 불러주는 글을 적고 덜컥 장려상을 받았다. 제목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 동네'. 우리 동네 목욕탕에 단골손님인 할머니 4인방의 수다를 엿듣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아이디어는 기가 막혔다.

언젠가 친정 집에 들른 남편은 나의 대학 시절 리포트를 보고 기겁했다. 이것이 정녕, 한국말인지... 주어 서술어가 하나도 맞지 않는 정체불명의 정치학, 역사학 숙제였다. 남편은 물었다. 대체 무슨 학점을 받았냐. 음... 씨뿔? 그리고는 신문사에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입사 시험을 통과한 것이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이 든다. 수습기자가 되어서도 단 3줄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지 못해서 어느 날은 선배 기사를 연필로 꾹꾹 눌러 100번 따라 쓰기 하란 숙제를 받았었다. 전형적인 신입 트레이닝이라고는 했지만, 100번 쓰는 동안 나는 완전히 밟혔다. 그래, 난 못 써.

물론 모든 글쓰기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은 아니다. 대학 학보사 시절 시인이던 국문과 교수님, 유명 스타 피디 출신 신방과 교수님, 현직 기자로 강의을 나온 정치부 기자... 대학 시절 진로를 신문사 기자로 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들의 극찬 때문이었다. 기자를 그만두고 드라마 작가가 되어보겠다며 작가교육원에 다닐 때에도 글을 잘 쓴다는, 글발이 있다는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너는 먹물이라 어려워."라는 핀잔도 함께.

먹물? 살아있는 삶의 글들을 쓰겠다고 모인 작가교육원에서 동기들의 글은 퍼덕퍼덕 살아 숨 쉬는 한 마리의 송어 같았다. 그들의 인물은 살아 움직이고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길바닥을 뒹굴며 땀을 흘리는데 나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말이 없이 조용히 하늘 한 번 보고 사라졌다. 이유도 없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도 없는, 무작정 사건만 일어날 뿐 그 안에 어떠한 감정의 변화가 행동에서 말투에서 그림에서 읽히지 않는... 허공 속의 인물들이 종이인형처럼 나부끼다 무대를 퇴장하곤 했다.

얼마 간을 헤매고, 나는 더는 앞으로 가지 않겠다고 교육원 친구들에게 안녕을 고하고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냥 살기 위해서. 그냥 나로 더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보려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살아있는 글을 쓰고, 나를 몇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장막도 하나씩 걷을 날이 오겠지, 하면서. 그런데 그게 참 잘 되지 않는다. 이것도, 생겨먹은 모양인지. 양파처럼 겹겹이 나를 에워싼 것들은 쉽사리 벗겨지지 않고, 아직도 나는 그럴듯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의 나만 보여준다.





쓰지 않은들 어떠리. 누가 내게 글을 쓰라고 하지도 않았으며, 내가 글을 쓰지 않으면 손목에 쥐가 난다거나 하지도 않으니까. 어쩌면... 나는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찍는 데에 재주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럼 이제부터 사진을 배워볼까? 아하하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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