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니고 마흔] 일곱 번째 이야기
재물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도 못하겠다. 먹고 입고 자는 곳이 깔끔하고 안락하다면 생활이 그런 만큼 생각도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재물을 부자가 되기 위한 목표나 척도로 계량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영원히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를 욕망하고 뒤쫓기만 하는 추적자로 생은 끝나 버릴 것이다. 얼마나 가져야 부자인 것인가. 끝이 없다 그건. 그러니까 재물은 아니다.
사람. 사람을 가지면 부자가 되나? 이것도 아니라고는 못한다.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 이런 사람을 곁에 많이 둘수록 내 마음은 평안하고 즐거울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내게 많은 걸 맞춰주고 있을 거다. 나의 말투 행동 취향 습관 스케줄... 그들은 나를 계속 좋아하고 따라주기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존심마저.
반대의 경우라도 같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 그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나는 나를 내려놓고 너를 보게 될 것이다. 둘이 혹은 셋이, 여럿이 화합한다는 건 그만큼 어렵고도 고귀한 희생이 따른다.
그러니 사람을 너무 많이 갖고 싶지도, 그런 관계를 유지하려 너무 많은 애를 쓰고 싶지도 않다. 자연스럽게 두고, 멀리서 적당한 만큼의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너무 많이 주고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거나 너무 많이 받고 그들을 은연중에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비록 인생이 그렇게 깔끔한 줄다리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느 시절부터 선명한 것들. 약수터, 학교 운동장, 교생 선생님, 회사 앞 맛집, 수없는 인터뷰이들, 오며 가며 인사하고 때로는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그 마음을 삶을 헤아려본 사람들. 계절이 남아있는 길가, 오래된 성당, 성당을 지키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지껄인 나의 거뭇한 속내, 그리고 나이 들고 있는 강아지...
많은 기억들은 추억의 이름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화려해지거나 보물찾기 하듯 새롭고 귀해지고 있다. 그것이, 그곳이, 그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였던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멈춘 시간 속에 새로이 더 새로이 거듭나는 존재들.
늘 같아 보이는 오늘 그리고 또 오늘... 시간은 그냥 밀려가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시간을 밀고 미는 기억들. 그것들은 앞으로 만날 새로운 공간과 사람 그리고 시간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며, 어느새 어제와는 다른 또 다른 나를 만들고 다시 또 스스로 기억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