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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Jan 31. 2019

리뷰) 스카이 캐슬 2

부모됨의 슬픈 그림자

한 회분을 남긴 <스카이 캐슬>. 경우와 정도는 다르더라도,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스카이 캐슬>을 보는 많은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 드라마의 반은 욕망이 끌고 가는 파국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나머지 반은 욕망의 뒷면, 그 쓸쓸한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왜그리 슬프고 힘겨운 길인가. 죽을 것 같은 고통으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존심도 체면도 양심도 내동댕이치고 살아가는데, 왜! 왜! 나는 나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가. 수렁에 빠진 드라마 속 네 명의 엄마들은 모두 절규한다. 그리고 그 처절한 속울음은 우리 사는 이곳저곳에서 공명하듯 울린다.


정말 모르겠어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애들 잘 키우는 게 우선이지 싶어서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 껍데기 같아요. 이렇게 허무할 수가 없어요. 내 속으로 낳은 딸이, 어떻게 그런 사기를 쳐요. 차라리 내가 그냥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애 키우는 거 너무 힘들어요. (승혜)


우아하고 품위있는 승혜(윤세아)는 하버드에 다닌다며 사기를 쳐온 큰 딸 세리의 비극을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남부럽지 않은 집안 출신, 그럴 듯한 남편과 엄마를 끔찍히 위해 주는 쌍둥이 아들도 두고 있는 승혜. 가부장적이고 엘리티시즘에 빠진 남편이지만 가장의 권위를 세워주고, 자신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승혜다. 매끼 정성스런 밥을 하고 교육 정보를 얻기 위해 분투하고 학생회 임원엄마로 팔 걷어 부치고... 승혜는 그것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승혜도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주저앉아 운다. 남편과 사회가 부여한 엄마라는 역할을 잘해내고 싶었던, 자기 기준과 욕망에 대해 완벽히 패했다고 백기를 들어버리는 것. 그런 승혜를 본 많은 엄마들은 눈물을 훔친다. 셋 중 누구 하나 떠맡겨 버리고 싶었던 그녀의 부담감과 책임감, 자기목표에 엄마들은 깊이 공감하는 것. 부르주아 사모님의 투정이라기엔, 승혜의 욕망은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아무 것도 아닌 주제에 영재 소설 쓴다고 나댄 거, 그것도 잘못했고 니가 곽미향이라고 밝힌 것도 잘못했고 내가 다 내가 다 잘못했어. 나 우리 우주한테 새 엄마인 것도 미안하고, 내 속으로 안 낳은 것도 미안하고, 이런 못난 엄마 만나서 그런 고생하는 우주한테 걱정말라고 엄마만 믿으라고, 걱정 말라고 꺼내준다고 했는데 방법이 없어.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우리 우주 내 아들 좀 살려줘... (수임)


패배하고 무너진 자는 승혜만이 아니다. 자아와 가치관이 확실한 작가 엄마 수임(이태란) 역시  아들 우주가 살인 누명을 쓰고 구속되자 사정없이 무너져 내린다. 쓰고 고발하고자 했던 자신의 욕망이 공명심이나 도덕적 우월감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수임. 자신을 비웃는 이들 앞에 납죽 엎드림으로써 엄마이기 이전에 '나'일수밖에 없었던 자신에게 벌을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구할 방법이 없는 무기력함으로 떼를 쓰고 구르며 한서진(염정아)에게 빈다.


네가, 그 어떤 방법을 쓰든 이겨야 했던 네가, 승자라고. 승자인 네가 패자인 내게, 아량을 베풀어달라고. '못난 엄마', 결국 수임도 인정해버리고 만다. 옳은 것만 보고 갈 줄 알았지, 아들을 보호하고 살릴 길을 열어줄 줄은 몰랐다는 반성이다. 작가이기 이전에 그녀는 엄마라는 죄인이며 약자이기 때문. 우악스럽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많은 엄마들의 뒷면, 그 쓸쓸하고 초라한 뒷모습의 정체를 이제야 직시하고 공감하면서.


이쯤 되면, 이 드라마는 엄마 반성문이다. 대한민국 엄마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성문. 사회 탓도 제도 탓도 남편 탓 자식 탓도 아닌, 오로지 내 탓으로 귀결되는 슬픈 반성문. 모든 엄마들의 밤은 이 반성문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 아빠의 말대로, "이건 반성하고 자책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가 그 여자와 맞서 싸울 일"일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대놓고 반성문을 쓰지 않는 한서진과 김주영(김서형), 이 드라마 최고의 악역이자 욕망의 주연급인 두 사람에겐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화살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에게로 향한다.


이래서 너한테 그런 불행이 닥친 거야. 니가 이따위라서. (서진)


언젠가 수임이 읽고 있던 그 책,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보는 듯한 두 여자의 맞불. 서진은 주영의 장애를 가진 딸의 비극이 엄마인 주영 탓이라고 확인사살한다. 주영도 마친가지. 19회의 마지막 대화에서 주영은 모든 실타래를 풀고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한 서진에게 경고한다.


어머니는 혜나의 죽음과 무관하십니까. (주영)


이 둘을 묶는 공통점은 자기 욕망에 대한 합리화, 그리고 남의 고통과 나는 무관하다는 꼬리자르기, 내 자식이 당한 걸 너도, 혹은 내 자식만 아니면 되지, 라는 강력한 이기심과 복수심이다. 이들이 짊어진 삶의 고통은 어쩌면 나머지 인물들보다 무겁다고도 볼 수 있다. 술주정뱅이 폭력꾼 아버지와 가난, 장애를 가진 딸.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 수렁을 준 건 이들 자신은 아니었다. 그들 탓이 아니다.


문제는 그 수렁을 벗어나는 방법이다. 거짓과 그릇된 승부욕. 빨리 효과적으로 빠져 나올 순 있으나 수렁 그 자체를 소멸시킬 방법은 분명 아니었다는 것. 운명을 거부하는 것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엄마. 엄마로 산다는 것은 고통이고 굴레다. 사회가 찬양하듯, 모성애 신비나 기적따위는 없다. 다만 모성이 무엇인가, 부모됨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물으머 온몸으로 감당하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현실이 주는 순간순간의 희로애락.


그 속에서 엄마들은 저마다 받아들인다. 나를 거울처럼 보고 자라는, 또하나의 생명체. 내가 소멸한 후, 지구에 남아 또하나의 생명을 남길 인격체. 먹는 것, 입는 것, 생각하는 것조차 나를 복제한 것 같이 닮은 아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느 순간 아이를 바라보지만, 이것은 착시에 불과하다. 그저 한 인생이 새로이 삶을 시작하는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순간 나의 욕망과 비틀어짐을 들여다보는 일일 뿐이다. 물론 그 쉬워 보이는 일이 실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공감하는 지점이 여기다.


우리는 엄마됨의 슬픈 그림자를, 이 드라마를 통해 함께 보고 느끼고 있다. 네 명의 엄마들은 다 같은 그림자를 가졌지만, 자세히 보니 우리가 악역이라 부르는 두 명에게는 하나가 더 있는 듯하다.


남의 자식인줄 알았을 땐 죽든 살든 상관없었지. 그러다 니 새끼라니까 피눈물이 나?(주영)

  

혜나가 누구의 자식이든간에, 이 물음은 오래, 길게, 아프게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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