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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Jan 30. 2020

리뷰) 더 크라운

영 엘리자베스 2세 로열패밀리의 명암... 넷플릭스 오리지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은 영국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엘리자베스 2세 중심으로 윈저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와 최근 100년간 영국에서 일어난 여러 굵직굵직한 사건 그리고 국내외 정치 인물들의 비화가 잘 버무려져 있다. 마치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 그 짜임새가 정교하고 쫀쫀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생존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가감 없는 데다, 그들의 인간적인 과오와 고뇌도 과감하게 드러내기 때문.


극은 여왕과 왕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긴 내러티브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열패밀리의 역할과 임무를 소상히 보여주면서 왕가가 이렇게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에피소드를 진행시킨다. 여왕과 총리의 공적 사적 접견 장면을 통해서 그들은 명목상의 군주제가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관점과 태도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이상에 적합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할 만한 곳은 세련된 인물 심리 표현이다. 인물의 미세한 주름과 미간의 찌푸림, 눈동자의 흔들림과 고르지 못한 숨소리까지 잡아내는 것 같은 클로우즈업 화면이 등장할 때마다 극은 말이 아닌 인물의 복잡다단한 감정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이끌어낸다.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이 실존하는 인물들에 대한 호감과 이해도를 쑥 올려준다고나 할까.


그중 프린스 필립, 여왕의 남편인 에든버러 공작의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어린 시절 혁명을 통해 그리스 왕가가 무너지는 모습을 본 필립은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왕가의 절제된 태도와는 거리가 멀게 묘사된다. 어딘지 삐딱하고 때로는 규범과 규율을 냉소하며 자유분방한 언사도 마다치 않는다. 좋게 말하면 보다 현대적인 인물. 그러나 트라우마 때문에 찰스 왕세자의 교육에 엄격하고 아버지로서도 냉정하다. 감정이 풍부하고 혼자 있길 좋아하고 지지받아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아들의 특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주 기대하며 실망하는 아버지다.


사회적으로도 이인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그는 침묵하고 물러서며 기다려야 하는 존재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드러내서도 안되고, 공적인 자리에선 아내가 언제나 한걸음 앞에서 걸어야 하며, 숱한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은 아내와의 만남이 우선이다. 대개의 인간은 모임의 규모와 상관없이 그곳에서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 되고,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낀다. 아무리 호화로운 옷을 입고 근사한 밥을 먹는다 할지라도 매 순간 그의 행복지수는 평범한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중년기에 접어들며, 왕좌를 이을 적장자인 아들에게까지 여러 관심에서 밀리는 에든버러 공작은 국내외의 따분하고 형식적인 자리를 메우는 자신의 삶에 염증까지 느낀다. 그래서 그의 평생의 꿈인 우주비행사, 달 착륙에 성공한 미국의 비행사들을 초청해 도전하고 행동하여 성취한 위대한 인간, 영웅의 면모를 느끼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한다. 영웅들과의 15분에서 그들도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숱한 매뉴얼과 절박한 임무수행 때문에 위대한 순간에 인간적 상념에 빠질 틈이 없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


중년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삶에 딱히 이룬 것이 없고 이 세계에서 자신이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면주변 모든 것에 짜증과 회의가 일어난다. 매일의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뿐 백 년 앞의 자신들의 존재를 고민하며 반복되고 흐트러짐 없는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에게 찾아온 갱년기. 그는 비슷한 나이대의 우울감과 권태감에 시달리는 성공회 수도사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이 시기를 지나보낸다. 마치, 우리가 노년을 앞두고 인생의 의미, 덧없음, 죽음과 신을 어느 순간 받아들이듯이.


그 외 엘리자베스의 그늘에 가려진 동생 마거릿 공주, 찰스에 가려진 앤 공주, 왕좌를 버리고 사랑을 택했다지만 평생 불분명한 정체성의 경계로 힘겨워한 에드워드 8세까지. 이들 직계 가족의 이야기는 성공보다는 실패, 자신의 업적이나 빛남보다는 왕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지워가는 몰개성과 후퇴로 가득하다. 심지어 왕좌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영국 여왕조차, 정치적 사회적 식견이 뛰어난 총리와 각국 대통령 대사들 틈에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어디까지가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영역인지 헷갈려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 내 역할과 의무, 책임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삶이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역사극이 그렇듯, <더 크라운> 역시 인간의 이야기다. 한 사람이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고 사회적 역할을 해나가며 겪는 다양한 갈등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 그 숱한 위기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울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기도 하는, 때로는 누군가가 시킨 꼭두각시 인생이라는 비관을 넘지 못하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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