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는 햇볕이 따뜻했고 구름이 예뻤다. 익숙하고 오래된 친구집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름 모를 나무가 주택가 담장까지 내려온 그 황토색 벽돌집에 초대 받는 것 처럼 느껴졌다. 들어 가는 입구부터 여름과 가을의 어느 중간에서 물 빠진 연두색과 갈색의 그라데이션 같은 가을은 이전에 와보지 못한 봄도 여름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여름, 이자리에는 예쁜 수국이 피었겠구나’ 생각했다.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얼마나 부지런 해야 할까, 생각을 가지고 들어간 집안은 더 사랑스러웠다. 큰 창에는 가을 볕이 그대로 쏟아 지고 있었고 영국식 커피잔과 홍차잔이 엉덩이를 들어내고 있었다. 은발을 한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아직 서투른 손길로 POS기기를 두드리며 주문을 받아 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두근두근 하고, 신기한 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은발의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는 아메리카노라니. 기대되지 않으면 이상한 것 아니니
한참을 기다리고 앉아, 요즘 늘 읽고 있던 세익스피어에 관한 책을 꺼내 들었다. 또각또각 무언가 자르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은발의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 비록 비용을 지불한 음식이지만 저렇게 신중하게 또각또각 써는 소리라니, 정성이 가득한 것이 분명하다. 다시 책을 읽고 있었지만 좀처럼 집중하기 힘들만큼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행복함과 편안함이 이 공간에 함께 쏟아지고 있었다. 큰 창을 통해 내다본 정원은 아름다웠다. 잎은 마르고 연두색과 갈색의 그라데이션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타샤 그녀가 살아 있다면 정말 이런 집에 살고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정말 그녀의 정원에 초대 받은 걸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윽고 아메리카노가 내 앞에 놓여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세익스피어를 읽어 내려갔다. 간간히 첼로 연주음악이 들렸다. 처음 가본, 커피를 파는 이집은 전에도 와 본 것 처럼 편안했다. 유려한 기술이나 특별한 추출법이 없는 할아버지의 정성이 가득한 이집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공간을 가꾸기도 하고 준비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매일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집안을 정리한다. 거실 창문가에 놓은 화분에 물을 준다. 사랑이 없으면, 정성이 없으면 이 일들은 감동적이지 않은 일이 되고 만다. 나는 타샤의 정원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랑과 정성을 담아, 어느 오후 행복함을 선물해준 할아버지처럼 살아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누군가도 나의 공간에서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해 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요즘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 첼로 연주곡을 듣는다. 나에게 상냥했던 고양이 수염 같은 오후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