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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Feb 20. 2024

민낯의 요가

화장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근처를 나가더라도 비비크림 정도는 꼭 챙겨 바르는 스타일이었다. 왠지 기본 예의는 지켜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프로 예의 화장러였던 내가 최근 들어서는 시도 때도 없이 민낯으로 그냥 다닌다. 쌩얼로 다녀도 그저 예쁠 만큼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다지 좋은 피부도 아니면서 뒤늦게 이 무슨 근자감인지.


결론부터 말하면 요가 때문 혹은 덕분이다. 요가의 가장 큰 매력은 정직함. 좋든 싫든 매트 한 장 위에 몸과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멋진 요기니들 영상이 넘쳐나고 훌륭한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셔도 결국 매트 위 아사나는 나만의 것.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를 해보겠다고 수많은 영상을 찾아보거나 원장님을 귀찮게 하면서 안 되는 이유를 찾았지만 결국 그 아사나가 조금 편해진 지금에서야 그 조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것처럼 직접 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요가의 과정은 지난하다. 웃다 울다 온갖 감정적 정신적 신체적 변화를 두루 경험하는 신비 체험 즈음?


그러다 보면 딛고 선 발바닥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매트 위에 선 나 자신이 약간 좋아지며 매트 밖에서도 왠지 씩씩하게 살아볼 힘을 얻는 매직. 결코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 매트 위에서 느끼고 배운 모든 건 완전하지 않더라도 오롯이 내 것이라는 데서 오는 자족감이다.


요가를 통해 자주 부족한 나 자신과 마주하면서 오히려 단단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너무 부끄러워서 혹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기 싫었던 민낯을 어쩔 수 없이 봐야만 했다. 부족하고 엉성한 아사나뿐 아니라 남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조급함, 욕심, 위선처럼 애써 감춰뒀던 약점들을 바라보는 건 괴로웠지만 피할 수 없었다.


요즈음 다시 쌩얼을 마주할 용기에 대해 생각한다. 수련실에 익숙해진 만큼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그래도 이제 이 정도는 해줘야지라는 마음이 올라오는 게 문제. 호흡이 충분히 들어가고 나가지 않는 날도 모양 만들기에 급급해서 왼 팔을 무작정 뻗어 오른발을 잡으며 파리브리타자누시르사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었다. 부장가 아사나에서  여전히 목을 꺾는 느낌이 강해서 처음부터 머리를 지나치게 뒤로 젖히지 않아야 등과 가슴이 먼저 열리는데 급한 마음에 목부터 꺾어 정작 호흡의 통로를 막고 의미 없는 아사나를 유지하기도 부지기수.


여전히 아랫배 힘이 부족해서 나바아사나(보트 자세)에서 다리를 주욱 펴 드는 게 어렵고 웃카타아사나(의자 자세)에서 무릎에 힘이 들어가 팔을 위로 곧게 새우는 게 어렵다는 걸 인정하자. 어려운 아사나에는 욕심을 내고 집착하면서 정작 부족한 기본 아사나는 슬렁 넘어가려는 위선도 부끄럽지만 지금 내 모습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정직하기. 민낯의 요가를 통해 조금 더 용감한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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