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게 좋은 것에 관하여
요가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그만큼 지금 내 생활의 중심은 요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가 4년 차. 주 3회 요가원에서 1시간씩 수련하는데 간혹 요일이 바뀌는 경우는 있지만 일주일에 세 번은 꼭 지키려 한다.
주 3회가 그리 대단한 시간이 아닐 수 있지만 30년도 넘게 운동이랑은 데면데면했던 데다 아이가 줌 수업에 들어가는 오전 3시간이 너무도 소중한 나에겐 주중 반 이상을 요가에 할애한다는 뜻이고,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 요가 때문에 종종 거절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니 결코 가볍다고 할 순 없다. 요즈음 난 계절이 바뀌면 가장 먼저 요가복을 새로 사고 싶어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짧은 헤어스타일을 좋아하지만 요가할 때 불편할까봐 묶을 수 있는 머리 길이를 유지한다.
이 즈음되면 엄청난 요가 고수여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실력은 좋게 봐줘야 중급 정도 될까.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자세들이 수두룩한 건 당연하고, 여전히 팔 힘은 부족하고 말린 어깨를 펴는 게 어려워서 우르드바 다누라(후굴 자세)에서 팔을 주욱 펴는 게 힘들고, 에카 파다 라자카포타사나(왕비둘기 자세)를 시도하면 내 발은 영원히 머리에 닿지 못할 것만 같은 까마득한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가 좋다. 그것도 4년째 한결같이.
허약한 체질로 태어났으면서도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지 살면서 운동이라는 건 (보는 걸 포함해서) 아무것도 좋아해 본 적도, 꾸준히 해본 적도 없었다. 체력은 늘 딸렸지만 그 상태에도 적응해 그럭저럭 버티며 살았는데 30대 후반이 되자 몸에 위험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안 되겠다 싶어 큰 마음먹고 시작한 필라테스에서 무작정 열심히 하다 부상을 얻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조만간 가족들에게 짐이 될 것만 같은 위기의식이 더 컸다.
최악의 몸 상태로 마지막에 부여잡은 게 요가였다. 막연히 정적인 명상 즈음으로 생각해서 다른 운동보다 조금 쉽겠지 싶은 꾀도 났던 게 사실. 그런데 첫날부터 평생 땀이 안나는 체질로 알고 있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땀을 줄줄 흘리며 나왔다. 다음 날엔 마지막에 사바 아사나(송장 자세)를 하려 누웠을 때 눈물이 찔끔 나는 경험을 했다. 나는 요가에 푹 빠졌다. 내 삶은 요가를 기준으로 전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요가는 무엇보다 기쁨이다. 매트 안에서 보내는 한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요가원에는 함께 수련하는 분들과 선생님이 계시지만 우리는 엄밀히 말하면 각자의 요가를 한다. 처음에는 동작이 너무 어려워서 따라 하기에 급급해 딴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원장님 말씀이 제대로 들리기까지 거의 1년이 걸린 것 같다. 그다음 1년은 몸의 변화를 느끼는 게 좋았다. 아주 조금씩 몸이 변하기 시작하고 전혀 안되던 동작들이 자연스러워질 때 신기하고 즐거웠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내 몸 구석구석을 만나는 경험.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아니고 그냥 나였다. 나처럼 관계지향적인 사람에겐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들여다보는 경험 자체가 낯선 행복이었다.
한껏 설레던 썸 단계를 지나자 요가 때문에 행복하고도 괴로운 단계에 진입했다. 특히 작년은 대체로 그랬다. 일단 갑자기 들이닥친 팬데믹 현상에 요가원을 나가지 못하게 되니 삶의 전반적인 균형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홈트 유행에 동참해 유튜브를 틀어 보기도 했는데 요가하는 소년은 문제가 없었지만 요가원에서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흐트러지며 아이에게 쉽게 짜증을 내거나 기분이 금세 우울해졌다.
몇 달 후 조심스럽게 요가원에 돌아갔을 때 몸은 너무도 정직해서 마치 몇 년 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선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초보가 아니라는 생각에 잘하려는 의욕이 너무 컸던 게 도리어 독이 되었다. 이 즈음이면 시르사 아사나(머리 서기)를 할 수 있어야하는데,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도 다 되는 동작이 왜 나만 안되나 하는 좌절감에 속상한 마음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결국 마음만 한참 앞서던 욕심은 왼쪽 고관절을 크게 다치는 화로 끝났다.
그래서 요가는 깨달음이었다. 고관절 때문에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내가 골반 틀어짐이 심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통증 완화 치료를 하면서 스스로 골반 교정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침으로 통증을 어느 정도 치료하고 나서는 다시 요가원에 나갔다. 여전히 몸의 왼쪽은 오른쪽에 비해 차이 나게 둔했고 움직일 때마다 불편함이 있었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비워졌다. 부상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비교도 의미가 없었다. 그저 불균형한 지금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왼쪽 골반을 잘 살피며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데 집중했다.
여전히 조심하고 있고 좌우 불균형이 있지만 한동안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통증은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나와 요가는 평화로운 애정 전선을 유지 중이다. 코로나 상황은 끝이 보이지 않고 나는 여전히 시르사 아사나를 못하고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가 버겁다. 이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 가늠하지 못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꾸준히 요가를 하고 내 몸을 살핀다.
요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살면서 이렇게 못하는데 이만큼 좋은 게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요가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나는 조심성 많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는 늘 신중히 생각하고 최대한 치밀하게 준비해서 접근했다. 이러다 보니 결국 해볼 만한 것, 잘할 만한 몇가지 중 하나로 선택지를 스스로 좁혔던 건 아니었는지. 약간의 간을 보다 안될 것 같으면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는 시시한 썸만 타다 끝냈던 건 아니었나 자문해본다. 덕분에 살면서 큰 실패나 손해는 없었겠지만 어쩐지 삶의 반경이 무척 좁은 꼰대가 된 것만 같다.
그래서 지금 내겐 무모하게 좋은 요가가 특별하다. 요가는 나의 유일무이한 짝사랑이자 한계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하지만 닿을 수 없어도 좋고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그런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도 나의 작은 매트 안에 두 발을 단단히 디디고 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