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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Apr 15. 2022

무너지지 마

컨디션이 흐름을 많이 타는 편이다. 날씨만으로도 행복했던 지난주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이번 주는 비가 내리면서 다시 쌀쌀해지고 흐린 날이 계속되니 기분이 조금씩 처졌다.


더구나 어젯밤 아이에게 무척 화를 냈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 우연히 보게 된 아이의 책가방 때문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 다시 뭔지 모를 구깃구깃한 종이 뭉터기와 아무렇게나 접혀 들어가 있는 노트들이 심란하게 뒤섞여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했다.


'여전히 자기 주변 정리를 못하는' 것에 대한 합당한 꾸지람이었다 변명을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화가 났던 진짜 이유는 나의 불안이란 걸. 곧 중학생이 될 아이가 이렇게 본인 가방도 못 추스러서야 매일 공부는 어떻게 해나갈까 싶었다. 이미 낮에는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고 기분따라 소비했던 순간들을 곱씹으며 한껏 우울하던 터였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


하타는 한 동작에 깊이 호흡하며 오래 머무른다. 주 초반 힐랙스로 몸을 풀고 빈야사로 몸을 깨웠다면 오늘 하타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보충 혹은 심화 수업의 느낌이랄까. 수련이 쌓일수록 아쉬탕가보다 오히려 하타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하타는 훨씬 섬세하기 때문이다. 빠른 흐름으로 진행되는 빈야사나 아쉬탕가 중에는 아사나를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없고 동작이 잘 안돼도 지나는 경우도 있는데 하타 수련 중에는 잘하고 있다 믿었던 아사나도 여전히 부족하구나 깨닫게 되는 수가 많다.


화요일 빈야사를 하면서 한쪽 무릎은 세우고 반대 다리는 죽 뻗는 안자니 아사나(로우 런지 자세)는 수월하다 생각했는데 오늘 하타에서 로우 런지 자세에서 조금 더 깊이 상체를 후굴하자니 곧바로 고관절에 통증이 오면서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힐 수가 없었다. 다시 슬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 하타 수련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다리를 앞 뒤로 뻗는 하누만 아사나(원숭이 자세) 나 다리를 양쪽으로 뻗고 앞으로 내려가는 우파비스타코나 아사나(박쥐 자세)는 특히 인내력을 요한다. 자세가 완성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동작 안에서도 매번 약간 불편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다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뻣뻣한 사람은 여전히 이 자세 중에 짜증이 솟구칠 때가 왕왕 있다. 다리를 양 옆이나 앞뒤로 벌리면 고관절 부위가 당기는 느낌이 나고 그 고통 속에 자세를 유지하고자 낑낑대다 보면 갑자기 그만 다 포기하고 싶어 진다.


한번 터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모든 동작에서 흔들린다. 이런 날은 80분이 참 길다. 중간에 시계를 흘끔 바라본다. 그만할까, 잠시 화장실 다녀올까, 컨디션이 별론데 이걸 계속해야 하나, 오늘 괜히 왔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다행히 그 순간 우연히 봤던 어느 요가 피드를 떠올린다. 시르사 아사나(머리 서기) 영상이었는데 완성 자세가 아니라 올라가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떨어졌다 다시 올라가는 미완의 영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멋지고 화려한 요기니가 넘쳐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이 영상과 함께 시르사 아사나는 올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실패하고 부족해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기 위해 성실히 수련하는 것이란 피드는 신선한 감동이 있었다.


이상한 완벽주의가 있는 나는 종종 어느 작은 한 부분에 집착하다 어느 순간 아예 전체를 다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그러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다잡고 힘을 모아 한번 더 팔과 다리를 주욱 펴서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를, 떨어졌다 올라가길 반복하며 시르사 아사나까지 수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와르르 무너지지 말자고,

무너져도 기어이 다시 한번 올라오자고,

포기하지 말자고,

오늘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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