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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Jun 24. 2022

가만히 들어주었어

얼마 전 그림책 학부모 연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코리 도어펠드의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그림책을 함께 읽었는데 단순한 듯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공들여 만든 장난감 성이 무너져 속상한 아이와 이를 위로하려는 여러 동물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아이보다도 더 호들갑스럽게 굴거나 분노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도우려 하지만 정작 아이는 위로받지 못한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다가와 조용히 곁에 있어주었던 토끼에게 아이는 스스로 도움을 청하고 토끼는 아이가 내뱉는 모든 이야기, 분노, 웃고 우는 걸 '가만히' 들어준다. 마침내 아이는 다시 더 멋진 성을 만든다.


내가 과연 모든 걸 가만히 지켜봐 주고 들어주는 부모인가 반성도 했지만 역으로 나에게 그런 토끼 같은 존재가 있었나도 생각했다. 가만히 들어주는 토끼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니까.


안타깝게도 당장 그 누군가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이번 주 수련 중에는 그런 대상을 찾는 게 쉽지 않고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면 스스로에게 토끼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 싶었다.


수련 중 가장 자주 듣는 단어가 드리시티(drishti), 즉 시선 처리다. 수련 초기 원장님 말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지나치게 거울에 의지하지 말라는 거였다. 내 아사나가 올바른지 자꾸 눈으로 거울을 통해 확인하려 하지 말고 감각하라는 말씀이었는데 수련을 할수록 그동안 얼마나 내 시선이 밖으로 흩어지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거울로 지금 내 상태를 확인하고 싶고 타인을 힐끔거리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드리시티를 자연스럽게 동작을 따라 두거나 코끝에 두려 노력한다. 이게 어려우면 부동자세에서는 아예 가볍게 눈을 감는다.


이번 주 역시 습한 날씨나 생리 주기 때문에 수련이 쉽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차곡차곡 수련을 쌓아가자 다시 굳게 마음먹고 수련에 임했지만 바카나사(까마귀 자세), 에카파다 갈라바사나(나는 비둘기 자세)처럼 암발란스 동작들이 많아 어깨와 팔 주변 근육통에 목요일 하타 수련에서는 무릎을 접은 시르사 아사나조차 버티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했다. 습한 날씨에는 몸이 잘 열리는 만큼 다치기도 쉬우므로 벅차다 싶으면 무리하지 않고 사바아사나로 눈을 감고 쉬었다.


드리시티가 밖으로 향할수록 누구보다 더 가혹하게, 가차 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평가했다. 힘들거나 정체된 상태를 인정하는 게 괴로웠다. 무슨 소리야, 더 할 수 있잖아. 이건 최선이 아니야 라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그런다고 갑자기 힘이 나고 더 잘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내겐 도리어 그저 가만히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스스로 준비될 때까지. 드리시티를 안으로 깊이 기울이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운 이번 주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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