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까지 한 끼도 못 먹고 일하고 있다는 프리랜서 여동생의 눈물 이모티콘이 가득한 톡을 보고 당장 집으로 오라 했다. 아직 싱글인 여동생은 프리랜서로 일하며 더 바빠진 느낌이다. 일이 몰릴 땐 끼니도 거르고 잠도 못 자며 일하는 모습이 걱정도 되고 안타까운데 마침 작업실이 그리 멀지 않으니 이럴 때 내가 해줄 수 있은 일은 불러 따뜻한 밥 한 끼 먹이는 것.
냉장고에 별다른 반찬이 없었지만 오전에 장 보면서 사둔 2천 원어치 톳이 있으니 왠지 든든했다. 요즈음 그냥 먹어도 달큰한 햇 곱창 돌김에 톳밥이면 뭐가 더 필요할까 싶었다.
솥밥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요리다. 한 솥에 원하는 각종 재료들 넣고 양념장만 곁들이면 다른 반찬도 필요 없는 훌륭한 한 끼가 되니까. 그래서 겨울이면 굴이나 톳을 넣고 봄이면 미나리, 여름이면 가지나 콩나물을 넣어 자주 솥밥을 한다. 밥뚜껑을 열 때 따뜻한 밥에 얹어진 그날의 재료 향이 훅 스며들면 내가 하고 내가 킁킁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그냥 밥만 씹어도 풍미가 느껴지고 양념장을 곁들이면 감칠맛도 더해지니 여기에 된장국이면 그냥 바로 행복해지는 맛!
다시 톳으로 돌아와서, 톳은 식초 물에 잠시 담갔다 여러 차례 헹궈 이물질을 제거한 후, 꼭 살짝 데치는 과정을 거쳐야 독소가 없어진다고 한다. 줄기는 모두 제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주 굵은 부분 약간만 제거하고 먹기 좋게 3~4센티 정도로 잘게 잘라 거의 모두 사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무쇠솥에 냄비밥을 하면 더 맛있겠지만 집에 있는 압력(전기) 밥솥이면 충분하다. 평소보다 약간 적게 물을 잡아 씻은 쌀을 담고 살짝 데친 톳에 국간장을 한 숟가락 정도 넣으면 끝. 밥이 되는 동안 간장 3T(맛간장이 있다면 활용하면 좋고 아니면 양조간장 2T에 국간장 1T 정도 섞어보자), 참기름 1T, 다진 대파 1T, 다진 마늘 1t, 통깨 1t 정도를 섞어 양념장을(매운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고춧가루량을 늘리길 추천) 만들어 준비한다.
다행히 퇴근 시간인데도 차가 막히지 않았다며 밥이 다 될 때 즈음 동생이 때마침 도착했다. 곧이어 퇴근한 남편도 도착했고. 하루 종일 학원 다녀오랴 줌 수업하랴 방학이어도 바쁜 아이까지 좁은 식탁에 넷이 둘러앉아 갓 지은 톳밥에 양념장을 얹고 쓱쓱 비벼 돌김에 싸 먹고 김치에 곁들여 먹고 배춧국을 들이켜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 맛있다 미소가 핀다. 그날의 희로애락을 녹차로 입가심하며 날려 보낸 밤은 든든하고 포근했다.
주부 경력이 14년이지만 여전히 가끔은 내가 뭘 하는 건가 이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는 왜 주부로도 (요리, 청소, 교육 등등에서) 부족한가 자괴감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다 근래 들어서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으로 직접 들어가는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요리는 익숙해질수록 나만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 즐거워진다. 무엇보다 대단한 요리가 아니어도 집밥만이 주는 든든함이 귀한 걸 이젠 잘 안다.
하루 종일 바깥세상에서 살아내느라 오늘도 수고 많았을 내 사람들이 입 안 가득 밥을 넣고 오물오물 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이 그냥 다 흘러가버리는 듯하다가도 그래도 이렇게 의미가 되어 남는구나 생각한다. 이 한 끼가 쌓여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남편과 동생은 내일을 다시 시작할 기운을 얻고, 나는 또 돌 밥 돌 밥 하면서도 새로운 메뉴를 고민해보겠지.
피곤한 하루의 끝이지만 힘을 얻고 싶을 때 김밥 말고 톳 한 봉지를 사오자. 굴이나 홍합 당근 등 다른 재료들을 더 넣어도 좋겠지만 없으면 그냥 번거로울 일 없이 톳 하나로도 충분하다. 모두가 따뜻한 밥 기운으로 든든하게 내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외롭지 않은 밤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