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요가를 사랑하는 거니,
아님 요가복을 사랑하는 거니,
그것도 아니면 요가복 입은 너 자신을 사랑하는 거니?"
원장님께서 당신 자신도 마음 아팠지만 함께 수련해 온 누군가에게 이렇게 상처가 될 질문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셨다. 수련을 마치고 이제 막 사바 아사나로 들어가 쉴 준비를 하다 갑자기 정신이 퍼뜩 났다.
나한테 던진 질문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뜨끔해서 벌떡 일어날 뻔했던 건 그 순간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금 주 신상 요가복들과 무서울 정도로 내 취향을 간파해 버린 인스타그램이 수시로 업데이트해주는 새로운 요가복 브랜드를 홀린 듯 무의식적으로 클릭해 탐색하던 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고백컨데 옷을 무척 좋아한다. 화장이나 뷰티에는 상대적으로 무심한 편이지만 어릴 때부터 색감이나 구조, 형태가 아름다운 옷들은 보는 것 자체로 행복했고 그중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일은 더 즐거웠다.
옷을 좋아한다 스스로 인정한 지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옷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옷에 집착하는지는 어릴 때부터 원하는 옷이 있으면 엄마 친구에게까지 얻어내고야 말았던, 그리하여 지금은 패션 기자가 된 동생을 곁에서 보아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 나에게 옷은 차애 정도 되는 취향의 한 영역이자 스스로를 표현하는 현대인의 기본 소양 정도였다.
요가를 시작하고 확실히 옷에 대한 관심이나 소비가 줄기도 했다. 요가원을 빼고 다른 활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매일 뉴스에 나오는 높은 이자율과 퍽퍽한 살림살이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요즈음이라 더 그럴 것이다.
다만 물욕이 줄었다 호언장담했던 게 무색하게 수련이 오래될수록 옷장에 요가복도 늘어났다. 남편은 물욕이 준 게 아니라 취향이 바뀐 거 아니냐고 진심 담긴 농담을 했다. 얼마 전 정리를 하다 보니 정리할 옷의 반은 요가복이었다는 것만 봐도 지난 5년간 요가만큼 무한한 요가복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댄 걸 인정한다.
그런 장면들을 떠올리며 다소 머쓱하고 씁쓸해진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뜬금없이 슬금 억울한 마음이 든다.
아니 근데,
요가복 좀 좋아하면 안 되나?
요가복 입은 나 자신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
요가원 벽 한 면 전체를 다 채우는 거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오래 다녔지만 딱히 수련 중 의식하는 누군가가 있지도 않다. 워낙 자다 일어난 듯한 생얼 상태로 들어가 땀을 마구 흘리고 머리는 산발이 된 채 수련실을 나오기 때문에 예쁘게 차려입었다고 그 모습이 근사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이 요가복은 순수하게 내 만족이다. 요가 수련 기간이 늘수록 감각도 깨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련 초기 좋아했던 어떤 브랜드는 전체적인 색감과 디자인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홀터넥은 잘못 고르면 경추를 압박하니 실패가 많았다. 움직이지 않게 잘 잡아둔다 여겼던 어떤 상의는 사실 가슴을 많이 압박하고 있어 가슴을 펴는 수련에 방해가 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많이 입는 레깅스는 평소 옷을 딱 맞게 입지 않는 내 스타일상 스스로 어색하니 수련에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내게 잘 맞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스타일을 추려왔다.
이 과정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한 건 깊이 반성하겠지만 한편 이런 낭비가 없었다면 여전히 내게 맞지 않는 수련복을 입고 불편한지도 모른 채 수련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꼭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요가복을 발견했을 때 이 옷을 입고 부드럽게 호흡하면서 적당히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매트 위의 스스로를 상상해 보는 일은 분명 자극이 되었다. 아름다운 요기니들을 보며 질투도 나고 보이는 것에 다시 사로잡히기도 하니 방해도 되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나도 언젠가라는 꿈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요가복에 대한 사랑도, 요가복 입은 내 모습을 사랑하는 나 자신도 약간의 쓸모는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 무슨 대단한 자아발견처럼 의미를 부여해 보지만 이 모든 건 한낱 온라인 요가복 쇼핑 중독자의 얄팍한 변명일 뿐일지도. 여하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 않던가. 그러니 (요가복)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