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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Dec 05. 2023

총명과 심미안

총명聰明.

심미안審美眼.


연말이라 그런지 곱씹어보게 되는 금 주의 키워드였다. 한의원 광고에서나 보던 총명탕 말고는 오랜만에 들어본 단어의 첫 글자, 귀 밝을 총이 귀와 바쁘다는 한자로 이루어져 있단 사실이 흥미로웠다.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을 읽으면서도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라는 심미안의 살필 심자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바쁜 귀와 아름다움을 살피는 눈이라.....


핵심은 둘 다 열심히 직접 보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뉴욕타임스가 무려 한국의 소멸을 점쳤다는 이 시점에 무엇이 사실인지,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직접 겪고 생각해 보는 건 중요하다.


즐길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요가가 매력적인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매트 위에 서면 그동안 학연, 지연, 그 밖의 쌓아왔던 모든 건 사라지고 온전히 지금의 내 몸과 정신만 남는다. 재능도 기초도 없이 마이너스 백 즈음에서 시작해 하찮은 운동 신경으로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던 대혼란의 장이었지만 그중 살아남은 몇 가지는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한동안은 온몸으로 체득해 익혀온 아사나 하나하나가 너무 귀해서 잠깐이라도 쉬는 게 불안할 정도였다. 하루 이틀 만에도 다시 그전으로 돌아가버린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단계도 지나 요즈음 수련을 하는 마음은 대체로 평화롭다.


엄청나게 몸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여전히 하루만 쉬어도 뻣뻣한 건 여전한데) 마음이 달라졌다. 이 편안함은 분명 자신감인데 객관적인 실력을 고려하면 근자감에 가까워 스스로도 어리둥절할 지경.


하지만 자신감이란 정말 경험치에서 나오는 것인가 보다. 시작할 땐 뻣뻣해 가만 앉아 양팔을 깍지껴 들어 올리는 것조차 어색하던 몸이 파리브리타 트리코나아사나(회전하는 삼각자세) 같은 수련을 하다 보면 조금씩 기분 좋게 풀려나간다. 어제는 접근법을 조금 바꾸니 다시 시르사 아사나에서 흔들렸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 하프밴드를 가뿐히 해내고 시르사 아사나에서 다리를 뒤로 접어 넘어가는 시르사 파다 아사나까지 호기롭게 도전했다. 이젠 후퇴도 전진도 모두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몸은 느끼고 있으니까, 이 시기도 지나갈 거란 것을.


책이나 다른 사람의 말에 기대어 기울어진 채 살아왔던 인생이 내 몸으로 먼저 감각해 보며 조금씩 바로 서고 있다. 이 방법은 낯설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정도로 더디지만 기쁘고 행복한 여정이다.


총명하게 수련하고 심미안을 구하고 싶다, 삶도 요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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