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4
https://youtu.be/-gVArx2avdI
나는 사실 슬픔보다는 기쁨에 민감한 편이다. 감정이 울컥 올라오고 눈물이 나려고 하는 때가 슬픔보다는 기쁨을 마주할 때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온몸으로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표출하는 장면을 보면 전율이 일고 눈물이 북받쳐 오른다. 그래서 나는 종종 펜싱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 영상을 보거나 자주 축구선수들의 셀러브레이션 영상을 본다. 그리고 아주 우울할 때엔 2010 남아공 월드컵 주제가인 Wavin' Flag를 듣는다. 보통 월드컵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쓰인다.
내가 축구 경기를 즐겨 보는 이유는 필드 위에서 인간의 날 것의 감정들이 있는 그대로 맥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킥오프의 긴장감, 판정에 대한 분노, 득점 순간의 환호, 패배의 슬픔, 그리고 위로. 그 가운데서도 환호의 순간은 나를 늘 매혹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90분 간 필드 안팎의 모든 사람들은 날 것의 감정들을 마음껏 표출한다. 필드 위에선 승패가 있기 마련이므로, 승자는 기쁘고 패자는 슬프다. 강한 자는 승자가 되지만, 종종 약한 자가 승자가 되기도 한다. 합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직관이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매 순간 솟아오르는 모든 감정을 우리는 남김없이 드러내고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 어느 영역에서도 볼 수 없는 날 것의 감정들이 필드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모두는 같은 감정들을 공유하며 하나가 된다.
강한 자는 승자가 된다. 패자는 다시 돌아올 미래를 기약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더 강해진다. 그렇게 필드 안팎의 시간이 흐를수록 남는 것은 슬픔과 분노가 아니라 열정과 환호다. 우리에게 깊고 원초적인 울림을 주는 것은 지극한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불평등하지만 기쁨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날 때부터 슬픈 사람과 날 때부터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기쁨을 갖고 태어난다. 강한 자와 약한 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경계를 지우는 것은 어쩌면 지극한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순간 순간 하나의 감정으로 열광하는 우리는 펄럭이는 깃발처럼 찬연히 우리의 색을 드러낸다. 팀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뭉친 우리들은 열정과 환호 속에서 깃을 친다. 중요한 것은 팀과 국가가 아니다. 펄럭임 그 자체다. 필드 위의 모든 펄럭이는 깃발들은 한 국가의 국기가 아니라 자유의 깃발이다. 국가가 어떻든, 피부색이 어떻든, 모든 인간은 필드 위에서 동등해진다. 승패는 게임일 뿐이다. 능력의 차이도, 기질의 차이도 아니다. 그저 순간 순간에 환호하는 것이 우리의 전부다.
Wavin' Flag의 노랫말이 참 좋다. 만약 먼 우주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게 우리 인류를 소개하고자 한다면, 이 노래를 들려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의 곳곳에는 넘치는 슬픔들이 있지만, 우리의 깊은 곳에는 순수한 날 것의 기쁨이 있다고, 우리는 슬퍼하는 기쁨의 존재들이라고, 환하게 깃을 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