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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칠수없는마음

200322

by 이건우

“마음, 마음이여 알 수가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꼽을 자리가 없구나.” (달마, 『관심론』)

마음. 내가 사랑하는 단어 목록에 있는 단어다. 다른 단어들도 참 많지만, 나로 하여금 그것을 언제나 알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서 마음은 다른 단어들보다 특별하다. 마음은 유독 미지의 영역에 있는 느낌이다. 마음을 무어라 설명할까. 마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우선 제쳐두고라도, 나는 나의 마음이든 당신의 마음이든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마음, 하고 발음하면 무언가 비밀스러운 느낌이 든다. 잠깐 열렸다 이내 닫히는 입술의 움직임이 마음의 모양 같다. 마음은 끝내 굳게 닫힌다. 기어코 문을 연다 해도, 그 마음은 이미 그 마음이 아니다.

마음만큼 알 수 없으면서도 알 것만 같은 것은 없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면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모순되는 두 문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지금도 그렇다. 도대체 알라는 것인가 모르라는 것인가. 세상엔 알게 모르게 이런 무책임한 구절들이 꽤 있다.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면서, “백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단다. 물론 전자의 구절들이 대개 현실적인 가르침에 가깝다. 모르는 것이 약이므로,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마음을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나은 것일까.

마음을 안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은, 마음을 안 적이 없거나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단순한 마음이란 내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먼저 내 마음부터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내 마음을 아는 일에는 필생의 시간이 소요된다. 대체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곤 한다. 내 마음을 아는 것보다는 안다 치고 넘어가는 일이 훨씬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기보단 “안다 치는 것이 약”이다.

마음은 다치기가 쉽다. 안 다칠 수가 없다. 마음이 다치는 이유는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내 마음을 안다고 확신하는 만큼 그 마음은 쉽게 무너진다. 단단한 껍데기는 무른 속살보다 깨지기 쉽다. 하지만 내가 내 마음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그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선생의 표현을 빌려 무지의 자각쯤 되겠다. 그렇다면 옛 문장들을 손봐야겠다. “모르는 것이 힘”이고, “아는 것이 약”이라고.

마음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알고픈 힘이 생긴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모르고, 내 마음을 모른다. 그래서 알고 싶어진다. 알 수 있을진 몰라도, 아는 것은 약이 된다.

마음에 바늘 하나 꼽을 수가 없다. 어떤 마음인지는 몰라도, 오늘의 마음은 단단히 날이 선 마음이라 바늘을 꼽을 수가 없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오늘의 마음 또한 비슷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때론 세상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보단 세상을 들이받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너른 마음을 가져선 안 될 때도 있는 것이다. 26만이라는 숫자 앞에 바짝 날이 선 단단한 마음들을 나는 알 수 있다. 적어도 오늘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 이 날은 n번방의 이용자가 26만 명 가량 된다는 보도가 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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