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2
큼지막한 유리판에 물을 붓는다. 유리판 한가운데 주먹 만한 물뭉치가 생긴다. 유리판을 천천히 기울여 둥그렇게 뭉쳐 있는 물뭉치를 흘려보낸다. 물뭉치는 여러 갈래 팔을 뻗어가며 흐른다. 펼쳐지는 물뭉치가 유리판을 넘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유리판을 다시 기울여 물뭉치를 모은다. 그러나 한 번 펼쳐진 물뭉치는 다시 물뭉치로 돌아가지 못한다. 언젠가 그런 놀이를 해 본 적이 있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고요히 뭉쳐 있던 마음뭉치를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는 일. 적어도 내겐, 마음을 쓰는 일은 나의 온 세상을 기울이는 일이며, 기울어진 세상을 타고 나를 흘려보내는 일이다. 한 번 기울어진 나의 세상은, 한 번 펼쳐진 나의 마음뭉치는, 다시 돌아가기 위해 흘러왔던 만큼의 배가 넘는 마음 씀을 필요로 한다. 마음을 쓰는 일은 그런 일이다. 그걸 깨닫게 되어서, 요즘엔 마음 써주셔서 감사하거나 마음 쓰게 해드려서 죄송한 날들이 부쩍 많아졌다.
마음의 쓸모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떤 사물의 쓸모란 그 사물이 쓰이는 목적이나 대상을 뜻하겠지만, 마음은 주로 쓰이는 목적이나 대상이 없으므로, 나는 마음의 쓸모라는 말을 마음이 쓰이는 모습이라고 읽는다. 뭉쳐있던 마음뭉치가 어딘가로 펼쳐지는 모습. 도로 주워담으려면 아주 많은 힘을 써야겠지만, 펼쳐지는 물뭉치를 보듯 마음을 쓰는 일은 아름답고 신기하다.
나의 마음뭉치는 어떤 모양으로 당신에게 흘러갈까. 나는 그 모양이 궁금해 자꾸만 당신에게 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