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
최근 들어 내게는 기이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단어를 바꿔 말하는 증상인데, 생각보다 잦고 무의식적이라 실제로 얼마나 자주 이 증상이 나타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단어를 바꿔 말한다는 것은 가령, 한 문장 내에서 오늘을 내일로, 목요일을 금요일로, 서울을 인천으로 바꿔 말하는 식이다. 나는 서울을 말했으나 나의 입은 인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사하고 근접한 단어만 그러는 것은 아닌 것이, 키친타월을 폼클렌징으로 바꿔 말하는 일이 꽤 잦았다. 한번 바꿔 말한 단어는 그대로 고착되어서 다른 단어로 바꿔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
단어를 바꿔 말할 때에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이 증상을 알아차린 것도 애인이 내가 자주 그런다는 것을 알려준 덕분이었다. 애인과의 대화에서 애인이 자주 길을 잃어버리곤 한 것도 내가 단어를 자꾸만 바꿔 말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키친타월을 폼클렌징으로 바꿔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후부터, 계속 나도 모르게 키친타월을 폼클렌징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족히 그랬는데, 다행히도 이젠 내가 자주 그런다는 것을 알아서, 내가 방금 단어를 바꿔 말했음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뱉은 문장을 다시금 반추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다. 키친타월을 말할 때엔 폼클렌징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보아야만 키친타월을 말할 수 있는 처지란.
바꿔 말하는 단어들의 목록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주 바꿔 말하는 단어들은 말하고 나서 바꿔 말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으므로, 바꿔 말할 때마다 기록으로 남겨 내가 바꿔 말하는 단어들에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남겨둔 단어들의 목록을 보는 일도 꽤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얼마나 멀리 있는 단어들도 서로 바꿔 말해질 수 있을까. 이를테면 키친타월과 폼클렌징처럼.
그래도 아직까지는 바꿔 말해지는 단어들이 서로 간의 친연성을 갖고 있다. 멀어 보이는 키친타월과 폼클렌징도 모두 무엇을 닦아 깨끗하게 한다는 점은 같으니까. 하지만 오늘-내일과 서울-인천보다는 멀다. 앞으로 더 멀어지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기이한 증상이 왜 생겼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증상을 자각하게 된 이후부터 내가 말하는 것이 다 내 것은 아니란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나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자나 깨나 입조심하라는 말은 언어의 경박성뿐만 아니라 언어의 오류 가능성을 경고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뱉는 말들은 간혹 전혀 다른 이름으로 모습을 속여 상대방에게 나타나기도 한다. 나의 단어들은 심지어 나를 속이기도 한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상대방이 나의 말들 가운데서 헤매거나 끔찍한 오해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해는 원래 의도치 않은 일이다. 서로 다른 언어의 행성에 사는 우리들은 각자의 마음을 번역기 삼아 서로의 언어를 번역하며, 그 번역기는 영원히 베타테스트 중에 있기 때문에 오해라는 이름의 오류를 쉽게 범한다.
덕분에 나는 내가 뱉은 말을 확인하는 습관을 만드는 중에 있다. 번거롭기는 해도 나의 말들이 모두 나의 말이 아님을 알아챈 이상, 그것이 언어의 오류 가능성을 줄여주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어를 바꿔 말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말이 나를 속이지 않고 내가 뱉은 말로서 상대방에게 도달했을 때만큼은 오류를 줄이고 싶은 것이 나의 기이한 증상을 두고 내가 먹을 수 있는 마음이다. 키친타월을 폼클렌징이라고 말할지라도, 나는 너라는 행성에 정확히 착륙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 복잡한 언어의 계기판을 보고 또 보고 있는 것일까. 각설하고, 키친타월을 모두 써버렸으니 우리 내일은 키친타월을 사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