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도에서 근무하는 신경과 의사입니다.
부산 영도구에 있는 해동병원에서 근무하는 신경과 의사다. 영도구, 엄밀히 말하면, “영도”라는 섬이다. 즉 섬에서 일하는 의사다. 영도는 부산에서 좀 개발이 덜된 지역이자, 타지 사람이 많이 사는 섬이다. 그리고 영화 친구의 실제 배경이 된 '칠성파', 그들이 조폭계에서 살인 보복을 다짐한 영도다리가 있는 바로 그곳….
처음 그곳에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왜 그 험한 곳에 가려 하냐?“
"더 좋은 병원으로 가지 왜 그런 죽어가는 곳으로 가냐?" 라며 말을 했었다.
근데 그곳에 가고 싶어 졌다. 많은 의사들은 도시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고 그리고 수도권이나, 이름 있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명함에 "나 이런 병원에서 근무 한다"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특히 요즘처럼, 자기 PR이 일반화되고, 누구나 자신을 내세우기 원하는 시대에서는 말이다. 물론 그 가운데 정말로 전심으로 환자를 위하고 열심히 사명감을 가지고 근무하는 의사들도 많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의사로 살아가는 가운데, 나의 맘을 참으로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가 있다면, 이는 돈이 많고, 이를 가지고 갑질을 하는 환자를 보는 것이다. 물론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환자의 직업 신분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야 함을 알지만, 솔직히 나에겐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부산에 와서 나름대로 이름 있는 병원에서 근무한 나로선 더 이상 서울 S or A 병원에서 천만 원 넘는 검진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그런 환자들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더욱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외래 진료 환자들, 그리고 밤낮으로 밀려드는 뇌졸중이나, 경련 같은 초 응급환자들로 인해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지친 나에겐 더더욱 그러했다.
나는 경제에 대해 잘 모른다. 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없기에...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 들 중에 하나는 다음이다. 즉 수익을 창출하는 하나의 원리로 허영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물건을 팔 때 재료값은 얼마 들지 않으나 어떤 상표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 상품의 가격이 원가의 수배, 수십 배 그리고 수백 배가 된다. 결국 우리는 원하는 상품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그 상표와 포장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똑같은 국수를 먹어도, 호텔에서 먹으면, 몇 만원이 되는 것과 같다. 의료도 마찬가지가 되어 간다. 검진을 해도 서울의 이름난 병원에서 검진을 하면, 천만 원이 넘고, (물론 그 가운데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선별검사가 아닌 불필요한 검사가 다 포함되고), 시골의 한 병원에서 검진을 하면, 몇 십만 원, 아니 심지어는 몇 만 원이면 된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런 시장논리를 의료에 적용하는 것이 좀 맘에 불편하다.
신경과 전공의 2년차 시절 춘천성심병원에 파견을 나간 적이 있었다. 역시 환타(환자 많이 타는 의사)로 유명한 나는 나의 별명에 걸맞게 환자들로 정신이 없었다.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입원환자들, 중환자실과 응급실로부터 끊임없이 울려대는 삐삐 소리에 정신없는 전공의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생체리듬이 매우 약하고 의식이 떨어진다는 연락이었다. 허겁지겁 중환자실로 가서 환자를 보았다. 매우 위중한 상태여서 기관 삽관과 중심정맥관 삽입술을 시행하였다. 나의 하얀 의사 가운에는 환자의 피와 가래가 튀고 있는 가운데 허리에 차고 있는 나의 삐삐는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응급실로 부터의 연락이다. 응급실로 전화를 돌렸다.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다는 할아버지인데 빨리 봐주지 않는다며,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것이다. 내가 와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정도 중환자실 환자가 정리된 뒤 나는 응급실로 달려갔다.
한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응급실 단골 고객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이 만취가 되어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며 응급실에 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응급환자라며 빨리 봐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난 것이다. 이에 나는 화가 너무 난 나머지 반말로
“지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술 처먹고 난리야! 당신 때문에 다른 환자 죽으면 당신이 책임 질꺼야?”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더더욱 나에게 큰소리로 욕을 하며 덤비려 하였다. 하지만, 술에 취해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응급실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이에 더더욱 화가 나고 분을 참지 못해, 그냥 응급실을 박차고 나가 신경과 의국으로 달려가 의국 침대에 누웠다. 중환자실에서의 심폐소생술, 응급실에서의 흥분과 분노폭발로 인해 나의 심장은 폭주 기관차처럼 두근거렸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더 이상 화를 내기도 힘들 정도로 몸이 지쳐갔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아까 그 할아버지 어떻게 할까요? 제발 와서 해결 좀 해주세요. 제발”
나는 몇 번의 심호흡을 한 뒤 만성 수면 박탈과, 과도한 전공의 업무에 지친 몸을 이끌고 응급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애기울음 소리, 빨리 안 봐준다며 소리 지르는 환자와 보호자들, 119대원들에 의해 실려 오는 피와 살점들이 떨어져나간 교통사고 환자들, 그리고 그 가운데 술 취해서 단동을 부리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를 침대에 앉힌 뒤,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구 할아버지 도대체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세요? 뭐가 그리 속상하다고”
그러자 잠시 후 할아버지는 나의 어깨를 잡고 끄억끄억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너무 슬프고 억울하다고 하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 할아버지의 말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중에 응급실을 나갈 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었다.
순간 이솝 우화의 “해와 바람” 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환자는 무슨 짓을 하건 어떤 행동을 했건, 환자로서 의사 앞에 서면 환자는 약자이다”
라는 학창시절 정신과 수업시간 중 들은 내용이 떠올랐다.
영도에 온 지 2년을 향해 가고 있다. 사람들이 순박하다. 소박한 촌지로 집에서 말린 감이나 과일 그리고 붕어빵 같은 것을 사 가지고 오신다. 복도에서 처음 보는 환자분들 및 보호자 분들을 만나면, 의사 가운을 입은 나에게 인사를 해주신다. 얼마 전에는 팔뚝에 문신이 있는 한 젊은 청년이 나의 옆을 지나면서, 쓰고 있던 모자를 잠시 벗었다가 쓰고 갔다. 물론 원무과에서 소리 지르고, 난리 치는 환자 및 보호자들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많고, 살아온 이야기를 물으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듯한 충격적인 아픔과 상처를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 모두 다 도움에 갈급한 사람들이다.
처음 이곳에 오는 것은 반대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해 환자들에게 그리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디서 근무하고 어떤 병원에서 근무하고 어떠한 논문을 쓰고 발표 하며 상을 받는 게 뭐가 중요하냐?"라고 하시는 분들의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세상이 주는 상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직접 경험하게 되다 보니 세상이 주는 상의 의미가 크게 없어 보여 졌다.
대도시에 의사가 집중되고, 더 좋은 병원에 스펙을 쌓고, 그리고 자신을 영업하는 병원들이 많다. 남들은 내가 어리석다고 할지 모르나 나는 영도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스펙은 "내가 어느 병원에 있느냐?" 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의사가 되어 있느냐? 그리고 어떻게 환자를 위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느냐?"로 결정된다고 믿는다.
스펙은 내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내 본연의 일을 다 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