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배움이다.
* 시험은 배움이다.
(표지 사진: 필자가 2004년부터 지금까지 구독 중인 EBS의 중급영어회화 POWER ENGLISH교재)
의사 면허를 획득하고 의사라는 자부심에 시작한 나의 인턴생활, 특히 첫 응급실 당직은 잊을 수 없는 악몽이자 추억이다. 환자가 왔을 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어떤 상황이 응급상황이고, 어떤 상황이 입원을 시켜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완전히 멘붕이었다. 의과대학에서 수없이 많은 질병과 수없이 많은 치료법 등에 대해 달달 외우고, 시험도 패스를 했는데 말이다. 심지어는 젊은 가임 여성의 경우 방사능 검사(X-ray or CT)등을 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임신 여부를 물어보고, 또한 소변검사로도 확인하라는 왕족보 중에 족보를 수없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환자를 볼 때는 뇌가 텅텅 비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엉겁결에 방사능 사진을 찍고 난 뒤 여성 환자에게 다가가 가슴 졸이며 임신 여부를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왜 기억이 나지 않았을까? 의사 면허 시험을 위해 그 많은 의학 지식을 외구고 시험도 봤는데 말이다. 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을까? 이는 바로 나의 해마(Hippocampus: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에 기록된 정보를 끄집어내서 활용하는 전두엽(Frontal lobe)의 능력을 전혀 훈련시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훈련의 기간이 바로 전공의 시절 환자를 보면서 길러진다.
나는 공부를 잘해본 적이 없다. 나의 첫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초, 중, 고등학고 통틀어서, 반에서 30등 안에 든 기억이 없다. 대학도 5번이나 떨어졌었다. 대학입시를 위한 학원 입학시험도 떨어졌었다. 추후 대성학원에 입학하였으나, 그 학원 안에서도 거의 중하위원을 맴돌았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대성학원 우등 반이었지만 말이다. 여하간 나의 중하위 성적은 의과대학 시절에도 꾸준하였다. 항상 나의 점수는 시들 시들 (CDCD) 대었고, 간혹 비실비실 (BCBC) 대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었다. 그러던 중 인턴을 마치고 신경과를 하게 되었다. 사실 신경과는 의과대학 다닐 때에 너무 어렵고, 너무 복잡하여 재시험을 본 과목 중 하나였다. 그러던 중 의사가 되었고,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인턴생활을 할 때에는 다양한 과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이때 새내기 의사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과가 어떤 과인지에 잠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그래서 그 기간을 통해 대부분은 자신의 향후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그 뒤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면, 4년간의 레지던트 과정을 밟게 되고, 전문의 시험을 통과하면, 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요즘은 점점 더 젊은 의사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과를 회피한다. 그리고 수련과정에서 많은 휴가 보장 및 근무 조건의 보장으로 우리 때와 달리 많은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필자는 신경학이 너무 싫었다.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그리고 외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였다. 그러던 중 신경과 인턴을 돌게 되었다. 신경과에 대한 학창 시절의 아픈 추억이 다시 되살아나 필자를 괴롭히는 듯했다. 뿐만 아니었다. 뇌졸중과 같은 초응급 환자를 봐야 하고, 야간에 응급실 콜이나, 중환자실 콜도 많았다. 삶과 죽음의 선상에 있는 위중한 환자들도 많고, 그러기에 사망진단서를 써야 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맘속으로 다짐했다. "신경과는 절대 하지 않을 거고, 앞으로도 신경과 환자 안 보겠지. 하지만, 인턴을 돌게 되는 것이 혹시 모를 나의 마지막 신경과 수업이 한 번 열심히나 좀 해보자"라고 맘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뒤 신경과 전공의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는 신경과를 하면, 진정 환자를 위한 삶을 사는 의사로서의 삶이자, 보람 있는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삶이라는 누군가로 부터의 말을 듣고 난 뒤였다. 나에겐 과거 학창 시절 수술을 받았던 기억, 그리고 갖은 잔병으로 병치래를 했던 기억들로 인해 그 당시 누구보다 환자를 위해 희생하려는 사명감은 뜨거웠었다. 신경과 전공의의 삶은 역시 힘들었다. (필자가 현재 72킬로 그램이다. 키에 비해 표준 체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체중은 59킬로 그램까지 내려갔었었다.) 간혹 off를 받아서 집에서 잠을 자다가 지나가는 사이렌 소리에 벌떡 잠에서 일어나 "내 신경과 류상효입니다."라는 말을 종종하였다고 어머니는 지금도 이야기를 하신다. 또한 간혹 길을 거닐다 어디 멀리서 엠블런스 소리가 나면, 가슴이 두근 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악몽 속에서도 열심히 좋은 의사가 되고자 했던 나의 열정을 하나님은 아셨는지, 그래서 나를 더더욱 단련시키려 했는지, 내가 당직서는 날이면, 환자들이 몰려왔다. 내가 화타[華佗 ]와 같은 명의여서가 아니라, 당직날만 되면, 응급실 및 (교수님들이 진료를 보시고 입원할 환자가 오면, 입원을 시키게 된다. 그 뒤는 전공의가 도맡아서 그 입원환자를 보게 된다.) 외래에서 입원환자들이 몰려왔다. 그래서 나는 명의 화타[華佗 ]가 아니라 환타(환자 타는 사람) 류상효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흘러 나에게도 4년 차의 계절이 왔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그리고 신경학 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놀랐다. 책을 넘기는 순간순간 "아! 그때 그 환자가 이거였구나! 아! 그때 그 증상이 이렇게 해석되는구나! 아! 그래서 교수님이 그때 이렇게 하라고 했구나! 아! 이때는 이렇게 했어야 하는구나!" 난생처음으로 배움이라는 것이 이렇게 놀랍고 즐거운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물론 시험에 대한 중압감으로 인해 전문의 시험을 보라고 하면,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여하간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나는 '나에게 더 이상의 시험은 없다'라고 믿었다. 그래서 필자는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 토익이나 토플 같은 언어능력 시험을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단지 처음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내 사전에 시험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처음의 목표를 유지하기 위해.... 원어민처럼 말하고 듣기, 영화 즐기기 그리고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공부 아깝지 않게 하고 싶은 말 원어민에게 영어로 맘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위해...
* 시험은 배움이다.
그러던 필자가 어느 날 시험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를 떠났다고 하는 시험을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험을 치르는 목적이 조금 달랐다. 시험을 패스하는 목적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것 외에 시험의 또 다른 목적을 찾았기 때문이다.
영광군에서 공보의 생활을 할 때 군내 공보의 모임을 가게 되었다. 그중 한 공보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본인 꿈은 의료 선교이고, 이를 위해서 공부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 의사 고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물었다. "요즘 미국 의사 고시는 실기시험도 어렵고, 3번이나 봐야 하고, 돈도 많이 든다고 하는데... 혹시 떨어지면 어쪄시려구요?"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떨어져도 준비하는 가운데, 학교 때 배운 것도 정리가 되고, 문제가 워낙 좋아 배우는 것이 많아요." 그리고 그의 이 대답은 나를 시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떨어져도 괜찮다. 배우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그의 말이 나의 맘 속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필자도 미국 의사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와 연락을 한다. 비록 해외 선교는 나가지 않았으나, 전주 예수병원에서 소화기 내과를 전공으로 하고 있으며, 국내 선교, 의료 선교를 위해 열심히 사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여하간 미국 의사 고시를 위해 막상 다시 학창 시절에 배운 기초의학부터 공부를 해야 한다니 좀 막막했다. 아니 아주 많이 막막했다. 그 많은 재시험의 기억들, 2주로 줄어들었던 나의 대학시절 방학들, 방학기간 동안 썰렁한 도서관에서 같이 재시험 준비를 하던 친구들, 그리고 시험 마치고 한 친구의 집에 가서 맥주 마시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공부를 했다.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었다. 다시 의과대학 학생으로 돌아가 기초의학책을 펼치고 의과학 책을 펼쳤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학창 시절 생각 없이 그냥 외우기만 한 지식이 새롭게 보였다. 학창 시절에 외운 나의 지식이 나의 해마에서 하나씩 꺼내져 오는 것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사실 학창 시절에 배운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임상경험을 한 전문의가 되어서 의과대학 학창 시절의 공부를 다시 하니 의학적 지식이 환자의 경험과 합쳐져서 공부하는 하나하나가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배움의 기쁨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지를 난생처음 경험하는 황홀감에 영광 노인전문 요양병원의 내 진료실은 밤이 가는 줄 모르고 불을 밝혔다. 그리고 시험의 당락을 떠나 배움의 바다에서 즐거운 유영을 즐기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아주 좋은 성적은 아니나 평균 이상의 점수로 기초시험, 임상 시험, 실습 시험, 그리고 미국 전공의들이 보는 시험까지 통과를 하게 되었다.
나의 영어학습도 이와 같았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실제 회화에 사용하거나, 영화를 자막 없이 보는데 혹은 내의사를 영어로 표현하는데 거의 소용이 없었다. 의과대학에서 수없이 읽은 원서도 사실 회화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회에 가서도 슬라이드 없이 외국인 연자가 하는 설명을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의과대학에서 많은 영어로 된 의학 원서들을 보고 읽지만, 이는 영어를 수학공식처럼 공식에 맞추어 해석하고 독해한 뒤 이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마치 의과대학에서 열심히 질병을 외우나 실제 환자를 보는 능력은 하나도 갖추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는 시험을 벗어날 수 없다. 필자의 지난 시험을 열거하자면, 고등학교 입시, 학원 입시, 대학입시, 그리고 의사면허, 전문의 면허 시험, 미국 의사 면허시험 등이 있다. 그럼 이러한 모든 종류의 시험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이에 필자는 시험에 대해 이렇게 질문하게 된다. 사실 시험의 일반적인 목적은 선별의 기능을 이라고 본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적절한지, 그리고 누가 능력이 되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시험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이는 바로 배움이다.
진정 우리에게 배움을 주는 시험일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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