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마음에는 안정이 필요하다.
원룸 복도에 어색하게도 참새가 있었다. 그것은 3층과 2층 사이 계단을 오가며 유리 창마다 온몸을 던지고 있었다.
텅 텅 텅 텅.
창 밖으로는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작은 하늘 조각이 파랗게 있었다. 참새는 그곳으로 확신을 가지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하늘은 계속 멀었고 머리는 아려왔다. 계단에 울리는 노크 소리는 응답이 없었다. 참새가 건물 안으로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궁금했지만 일단 머리가 깨져 죽기 전에 내 보내 주어야만 했다. 마침 3층 창에 몸을 날리기에 창문을 열어 주려고 가까이 가자 2층으로 도망가 더 격렬하게 창문을 들이받았다. 기분이 상했다. 마치 지하철에서 여학생 엉덩이를 만진 치한 취급을 받은 것 같았다.
잠시 후 힘이 빠진 참새는 2층 창틀에 몸을 뉘었다. 다가가면 분명 도망갈 것 같아 일단 집으로 돌아가 비닐장갑을 끼고 나왔다. 낯선 동물을 맨손으로 만질 자신은 없었고, 야생의 새를 맨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은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층계를 밟았다. 참새는 내가 2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포르르 날아서 3층 창으로 도망갔다. 3층 창은 미리 열어두어 '이제 됐다' 싶었는데 참새는 굳이 유리창으로 머리를 세차게 들이밀었다. 열리지도 않는 위쪽으로 몸을 부딪히는 이유는 그곳이 하늘과 더 가깝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대로 두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졌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도와주는 거잖아.'
무서웠겠지. 눈에 보이는 탈출구는 무언가로 가로막혀 있고 거대한 존재가 손을 뻗으며 좇는다. 죽을 만큼 열심히 도망쳐도 탈출구가 없다. 그때 참새는 죽음에 상응하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왜 내게. 왜 하필.
일단 진정시키려는 마음에 던진 티슈 한 장이 운 좋게 참새 위로 떨어졌다. 신기하게도 녀석은 얌전히 티슈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녀석을 두고 티슈보다 더 큰 헝겊을 찾다 눈에 띈 세탁망을 얹듯이 던졌다. 세탁망으로 감싸듯이 잡아 손바닥 위로 올릴 수 있었다. 그대로 창밖으로 손을 내밀고 감싸 쥔 것을 풀자 순식간에 뒤도 보지 않고 날아갔다. 고맙다는 말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서운한 마음은 들었다. 나중에 박씨라도 물어오려나.
티슈 한 장이 이렇게 효과적일 줄 몰랐다. 참새의 공포에 질린 눈은 출구를 보지 못했고 도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려운 마음은 자신의 생명을 갈아내어 불안과 공포만 처리하기 급급했다. 티슈 한장은 참새에게 잠깐의 휴식을 준 걸까?
어디선가 초식동물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모든 동작을 멈춘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을 사냥하려는 포식자들에게 ‘나 동물 아니야, 나무야’같이 보이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고라니가 고속도로에서 차를 마주치고 피할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녹색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회전을 하겠다고 달려오며 울리는 클락션 소리에 몸이 굳는다. 차가 지나가고 나서 울컥하는 마음에 달려서 건너갈걸 그랬다 싶다가도 나는 유전적으로도 포식자보다는 피식자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다.
당황하지 않고 싶다. 갑자기 닥친 상황이 스트레스가 아닌 반짝이는 즐거움이 되길 바란다.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의연함, 침착함, 담대함, 배포 그중 어느 것이라도 내가 갖게 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눈앞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탈출구로 머리를 들이미는 일이 아닐까.
티슈 한 장만큼의 휴식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http://www.naturephoto-c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