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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Apr 04. 2016

거짓말의 범위

타의적 거짓말쟁이

  석사 연구원은 네 살인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다. 엄마랑 오래 있고 싶었던 그녀의 딸은 종일 아빠와 놀다가 엄마만 보면 칭얼댔다. 그녀는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했지만 같이 놀 때는 잘 놀다가 엄마만 보면 그런다고 했다. 그녀는 어린 딸의 손을 꼭 잡고 거짓말하며 코가 길어진다고 말했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읽었던 피노키오가 떠올랐던 아이는 엄마의 말에 코를 감싸 쥐고 입을 앙 다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코가 길어지는 것도 거짓말이잖아요.”


  내가  함께 듣던 막내 선생님도 동의했다. 적잖이 당황한 그녀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연했다. 그 거짓말은 그녀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녀도 동화로 읽은 것을 또는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전달하는 행위는 사람의 죄책감을 줄여준다. 자기 이전에 누군가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들은 대로 전달하는 것은 거짓말은 아닌 걸까. 거짓말의 범위는 언제나 난해하다. 그러나 피노키오 이야기를 들려준 엄마의 코가 길어질 때까지 그것은 진실이다.

  나는 그 아이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  엄마의 말을 계속 믿을 수 바랐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발 나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일이 없기 원하였건만 자기소개서를 쓰는지 판타지 소설을 쓰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해리포터 독후감을 쓰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다. 강점은 커지고 약점이 포장되는 것, 거짓말의 범위는 언제나 난해하다.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해놓고 거짓말 없이는 못 사는 세상에 던져 놓았다.


  유치원으로 찾아온 산타의 루돌프가 주차장에 없다는 것도 그 산타가 들고 온 선물이 요정이 만든 게 아니라 made in china라는 것도 코가 길어지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성형외과를 다녀올 때뿐이라는 것도 모르며 살고 싶었다.


멍청함이 아닌 투명함. 솔직해야 한다는 거짓말.


  피노키오는 거꾸로 읽어야만 한다. 착한 나무인형이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나무 인형이 된 것이다. 나무 인형이 된 피노키오는 바른말로 코가 잘린 것이 분명하다.

  내 코는 아직 자라지 않았다.


<사진 출처: 영화 피노키오 Pinocchio,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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