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칼질에서 배운 인생
29살, 다소 늦은 나이에 요식업을 배우고자 무작정 퇴사를 했다. 어떤 일을 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그냥 요식업이 하고 싶었다.
식당일을 만만하게 본건 아니지만 일자리는 금방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았다. 세상은 냉정하고, 명확했다. 간단한 칼질 초자하지 못하는 나에게 주방일을 시켜줄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안 할 수는 없어 일을 시켜 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일이 설거지였다.
음식점에서 설거지를 하면 "조온나" 힘들다. 처음에 한 두 개야 그냥 씻어 내지만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손님이 밀려들 때 다 먹고 나간 그릇을 치울 때면 진짜 감당이 안될 정도이다. 누적이 되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뒷목에 핏줄이 두껍게 선다. 이 단계가 지나면 침착하게 일을 순서대로 쳐낸다. 이때 배운 일머리 덕분에 이제는 어떠한 일도 어떠한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설거지가 조금씩 익숙해질 때쯤 손님이 없고 한가한 날에는 마늘, 양파, 고추를 썰면서 칼질을 연습했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듯이 마늘은 두께 0.1미리, 양파는 간장소스 위에 올렸을 때 스며들어 손님이 먹을 때 입안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썰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주방보조이자 주방일을 태어나서 처음 했다. 이것이 될 리 만무하다. 인내심 있으신 사장님들은 이것을 해보라고 시켜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장님은 어림도 없다. 왜냐하면 잘 못하다가는 재료비가 낭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낭비된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 나는 배워야 하고, 내 몸이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했다.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출근하면 가게에 아무도 없다. 이때 나는 야채를 마구 썰어댄다. 칼질이 하루 하침에 한다고 해서 능숙해지지 않는다. 오늘 한 것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끈기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한 날은 매번 당근이 썰기 어려워 당근을 써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당근은 다른 야채와 달리 둥글고 딱딱해서 칼이 들어가다가 다른 방향으로 썰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했다. 사고가 날 때는 집중을 안 할 때 사고가 난다. 전날 과음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 당근을 썰고 있었다. 당근을 썰어야 하는데 손을 썰어버린 거였다. 그냥 썬 것도 아니고 야무지게 설어버렸다.
이때 든 생각이 "칼 맞으면 조온나 아프다"
이렇게 내손에 칼자국 이하나 하나 생길 때마다 칼질은 능숙해졌다. 의지와 꾸준한 연습은 어제 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로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힘들고, 익숙하지 않았다. 생전 처음 잡아보는 칼이었는데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베이고, 피나고, 반창고 붙여서 다시 시작했다. 일할 때는 모르고 하지만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그때 피곤과 함께 쓰라림이 찾아온다. 이런 시간들이 다 지나간 뒤에 나는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몸 하나로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주방일은 육체노동이지만 육체와 정신 모두가 힘들다. 적은 보수, 높은 노동강도, 대체 가능이라는 힘든 요소가 많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은 하지만 주방이라는 환경에서 적응 못하고 나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환경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버텨 냈다. 육체는 피곤에 쩔어 있었고, 정신은 무기력으로 감싸져 있었다.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자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 생활을 했으며, 이것을 버텨 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를 보았을 때 나는 변해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 매일 노출이 되다 보니 어떤 상황이 와도 침착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또한, 일은 처음이 힘들고 갈수록 쉬워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요식업을 하지 않지만, 이때 배운 역량은 아직 나의 초석이 되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잔가지는 흔를릴지언정, 뿌리째 흔들리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