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Vancouver
캐나다에서 첫날, 자고 일어나니 오후 3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거실 식탁 위에는 홈스테이 맘, 빌마가 나를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통밀빵에 양상추, 토마토, 칠리소스와 마요네즈가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밴쿠버 사람들은 점심을 샌드위치 또는 간단한 식사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렌지 주스와 샌드위치를 먹고 난 후 거실 소파에서 베란다를 바라봤다.
저 멀리 산이 보이고, 산 꼭대기는 만년설로 뒤덮여 하얗게 페인트칠한 것 같았다. 거리의 집들은 목조건축물 형식에 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도로는 미국 영화에서 보던 쭉 뻗은 도로였다. 도로 양옆으로는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인도로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인도를 벗어나면 잔디밭이 깔린 빌마의 홈스테이 집이 나왔다. 홈스테이 집은 2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베란다가 있어고, 방이 6개는 되었던 거 같다. 내가 왔을 때 한국인 형이 있었고, 나 포함에서 학생은 2명이었다.
11월의 캐나다 날씨는 맑은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비, 눈, 흐림, 또는 앞의 3개가 동시에 오는 날씨였다. 그래서 화창한 겨울날에는 사람들이 무조건 밖으로 나온다. 밖에서 광합성도 하고, 근처 공원에서 산책도 하며 햇빛을 부지런하게 사용한다.
이렇게 밴쿠버의 겨울은 흐린 날씨가 대부분이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더러 볼 수 있다. 줄어든 외부활동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또는 우울증이 심해진다고 한다. 더불어 겨울에 벤쿠버의 자살률이 올라간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자고 일어나니 맑은 하늘에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빌마도 나를 보며 밖에 나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도착했는데 친구도 없고 갈 데고 없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방에서 컴퓨터를 하면서 혼자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어느 서구 사회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저녁은 성대하게 먹는다.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 집에 있는 시간이다 보니 저녁을 풍성하게 먹는다. 빌마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닭요리, 소고기 요리 등 여러 음식이 내 입에 맞았다.
일주일 후에 나는 어학원을 가게 되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받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레벨테스트를 남미애들과 같이 받는데 남미애들이 문법은 약해도 말은 엄청 잘했다. 그래서 처음 대부분 남미애들이 높은 레벨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일본애들이 실력이 월등히 앞선다고 했다. 이유는 남미애들은 파티를 많이 해서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레벨 7까지 있는 학원에서 나는 레벨 4부터 시작했고, 문법 수업과 비즈니스 영어 수업을 함께 수강했다. 어학원의 커리큘럼은 오전 9시까지 어학원에 도착하면 12시까지 문법, 회화 관련된 수업을 수강하고, 1시부터 심화과정에 관련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들어가 보면 아시아 친구들은 굉장히 소극적이고, 남미애들 및 유럽 애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이는 아시아 친구들은 영어가 숙달되지 않은 것과 토론식 수업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이렇게 수업을 듣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3시 ~ 4시 정도가 되면 집에 왔다. 2011년 그때 캐나다에는 3가지 노선의 지하철이 있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왕복 1시간 정도 되는 길을 다녔다. 지하철은 한번 탈 때 3천 원 정도로 비쌌던 것 같다. 한 번 탈 때의 비용이 너무 비싸서 편의점에서 "먼슬리 패스"를 대략 8만 원 정도에 사서 한 달 동안 이것을 보여주며 이용했다.
밴쿠버 지하철은 한국 지하철과 다르게 표를 개찰구에 넣고 타지 않는다. 표를 끊고 타거나 안 끊고 탈 수 있다. 다만 경찰이 표검사를 했을 때 표가 없으면 이용요금의 30배 정도에 달하는 금액을 물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평일에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친구들도 많지 않고, 학원 공부도 비교적 쉬워 갔다 오고 난 후 쉬엄쉬엄 2시간 정도 예습, 복습을 하고 나면 할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