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1540) 새 왕비를 맞이한 헨리 8세가 남긴 곡
1540년 1월 6일,
482년 전 오늘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는 새 왕비를 맞이했습니다.
상대는 '클레페'라는 작은 공국의 앤 공주(Anna von Kleve; 1515–1557)였죠.
첫 번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과는 로마 교황청과 등지면서까지 이혼했고, 어렵게 재혼한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은 결국 처형시킨 헨리 8세...
세 번째 왕비 제인 시모어가 출산 후 사망하자 네 번째 왕비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이번 결혼에선 다른 신교 세력과 동맹을 도모하고자 루터파인 클레페 공국의 여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바다 건너온 앤을 보고 헨리 8세는 크게 실망했다고 합니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감행하는 정략결혼이니만큼
총애하는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을 보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오게 했었는데, 실제로 대면한 모습이 그림과는 달랐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헨리 8세는 예정대로 1540년 1월 6일, 482년 전 오늘 런던 그린위치의 플라센티아 궁전에서 결혼식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앤과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고, 6개월 후에는 이 결혼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앤에게 이혼을 통보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후 헨리 8세는 두 번 더 왕비를 맞았죠.
헨리 8세... 음악에도 재능이 있었던 왕이라고 하죠? 직접 작곡한 곡들이 여러 곡 전해지는데요.
그중에서 '어디에서 이야기해야 하나'(Whereto Should I Express) 골랐습니다.
Whereto should I express
My inward heaviness?
No mirth can make me fain
Till that we meet again.
Do 'way, dear heart, not so!
Let no thought you dismay ;
Though ye now part me fro,
We shall meet when we may.
When I remember me
Of your most gentil mind,
It may in no wise agree
That I should be unkind.
The daisy delectable,
The violet wan and blo—
Ye are not variable,
I love you and no mo.
I make you fast and sure ;
It is to me great pain
Thus longë to endure
Till that we meet again.
헨리 8세가 이 곡을 언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치적 명분, 실리, 사랑 사이에서 끊임 없이 저울질하고 갈등하고 선택해야 했던 왕의 삶이 짐작이 됩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정조대왕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헨리 8세는 클레페의 앤에게 이혼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살아갈 거처와 영지, 재산, 그리고 왕족에 버금가는 지위 등 좋은 조건을 내리며 달랬다고 하네요.
1540년 1월 6일, 482년 전 오늘은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가 6개월 지속될 네 번째 결혼을 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