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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tha Jan 08. 2022

왕의 남자의 라스트 콘서트

륄리, 1월 8일 오늘(1687) 치명적 부상을 입다

1687년 1월 8일,

335년 전 오늘

수십 년 간 프랑스 음악계를 쥐락펴락 해온 장 바티스트 륄리가 150명에 이르는 왕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앞에 서 있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한 루이 14세를 축하하는 자리를 위해 그가 좋아하는 <테 데움>(Te Deum)을 연주하려고 리허설 중이었죠.


프랑스 바로크 음악과 궁정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 <왕의 춤>

당시의 지휘 방법은 박자를 맞추기 위해 무게감 있는 긴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내리치는 것이었는데요. 순간 흥분한 륄리는 날카로운 지팡이 끝으로 그만 자신의 발가락을 찧고 말았습니다.이 불의의 사고는 태양왕 루이 14세와 그의 작곡가 륄리의 관계 속에서 바로크 시대 시대 왕정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낸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을 시작하는 충격적인 첫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와 왕의 남자 장 바티스트 륄리. 두 사람은 실로 오랜 기간 동안 각별한 돈독한 관계였습니다.  힘없는 소년왕 시절부터 루이 14세에게 륄리는 충성을 다했고, 마자랭 추기경이 사망하고 루이 14세가 비로소 스스로의 힘으로 통치를 시작하게 된 1661년엔 마침내 “궁정 음악의 총감독 겸 작곡가”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죠. 그간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궁정에서 멸시를 받아오던 터에 이 승진을 계기로 프랑스 사람으로 귀화했고요.  이름도 조반니 바티스타 룰리에서 프랑스 이름 장 바티스트 륄리로 고쳤는데요.   


이후 륄리가 궁정에서 얼마나 두드러진 입지를 확보했는지는 영화 <왕의 춤>에서도 잘 묘사돼 있습니다. 

루이 14세의 총애에 힘입어 궁정 음악 전체를 총괄하는 동시에 오페라 제작 독점권까지 얻어내면서 부와 명예를 축적했죠.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이용해 경쟁자들을 배제했던 것인데요.     


루이 14세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다른 음악가들에게는 횡포를 일삼았던 륄리에겐 적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륄리를 독살하려는 음모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여러 가지 모략과 음모가 난무하는 왕실에서 륄리도 결국 덫에 걸리고 맙니다. 륄리가 루이 14세의 시동(侍童) 브뤼네를 유혹했다는 사실이 궁정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인데요. 이 일이 루이 14세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서 륄리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서 륄리가 지휘하는 음악회임에도 루이 14세가 발걸음 하지 않는 '오늘'(1687년 1월 8일)과 같은 날도 오게 된 것인데요. 


평생 왕의 여흥을 위해 춤을 추고 음악을 만들어온 늙은 지휘자가 이날 얼마나 긴장하고 초조해했는지는 신발을 벗은 채 루이 14세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두 발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데요. 결국 륄리는 왕의 자리를 비워놓고 지휘를 시작합니다. 탁탁, 지휘봉은 내리칠지언정,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한 사람 생각뿐이었을 겁니다.


륄리(J. B. Lully) 작곡의 <테 데움>, 전체 연주 시간 40여 분에 이르는 그랑 모테트인데요.

그 시작을 알리는 '첫 곡 '을  들어보시죠.

영화 <왕의 춤> OST 앨범에서 골랐습니다.  라인하르트 괴벨(R. Goebel)이 지휘하는

무지카 안티콰 쾰른(Musica Antiqua Köln)이 연주합니다.

https://youtu.be/5XA6CZe6yrM


륄리의 <테 데움>은 원래 륄리가 아들의 세례식을 위해 작곡한 음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의 대부로 자처하고 나섰던 루이 14세가 워낙 이 곡을 좋아해서 왕실의 각종 행사에서 종종 연주됐었다는데요.


루이 14세의 조카딸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 공녀의 결혼식에도 륄리의 <테 데움>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1687년 1월 8일, 335년 전 오늘, 루이 14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테 데움> 연주 중에 생긴 이날의 부상으로 륄리는 다리 전체에 농양이 퍼지게 됐습니다. 의사들이 수술하지 않으면 발을 잘라내야 한다고 했지만, 음악가이자 무용가였던 륄리는 수술을 거부했죠. 그리고 석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3월 22일, 장 바티스트 윌리는 영욕의 생을 마치게 됩니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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