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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tha Jan 15. 2022

여왕의 춤

1월 15일 오늘(1559) 대관식을 치른 엘리자베스 1세를 기억하며

1559년 1월 15일,

463년 전 오늘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갓 스물다섯 살의 훤칠한 젊은 여성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위엄 있는 행렬을 시작했습니다.

영국인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여왕으로 꼽는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는 날이었죠.


엘리자베스 1세의 대관식 초상화


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복언니 메리 1세의 견제로 은둔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였던 엘리자베스는 이날의 대관식을 세심하게 기획했습니다. 구교와 신교의 피의 분쟁에서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운명을 헤쳐 나와야 했던 엘리자베스는 이날의 대관식 미사를 통해 이후의 잉글랜드가 종교적으로 어떤 길을 가려하는지를 영리하게 보여주었죠. 의식은 로마 가톨릭 전례를 따르긴 따랐지만 성경은 라틴어뿐 아니라 영어로도 봉독하게 했고,  미사 중간중간 자리에서 벗어나 쉬었을 뿐 아니라, 영성체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훗날 어느 외국 대사에게 자신의 대관식에 대해 회상하기를 "가톨릭 교회에서 가톨릭 주교들의 주례로 기름 부음을 받고 왕관은 썼지만, 미사에 참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데요.  


케이트 블란쳇 주연, 세자르 카푸르 감독의 1999년 영화 <엘리자베스>를 보신 분들이라면, 대관식 미사가 끝나고 시작된 축하 향연을 인상 깊게 기억하실 겁니다. 한껏 치장한 여인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여왕에게 한 남자가 다가가 용기 있게 춤을 청하고, 여왕은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낮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죠.


“Play a volta - 볼타 음악을 연주하라!”     


음악이 시작되고요. 여왕과 남자는 모든 이의 주목을 받으며 춤을 시작하는데요.


https://youtu.be/nx002D9N6qU

영화 <엘리자베스> 중에서 대관식 후 무도회 장면


남자가 여자를 번쩍 들어 올린 뒤, 한 바퀴를 돌리는 역동적인 '볼타'는 엘리자베스 1세가 실제로 즐겨 췄던 춤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여왕은 '갈리아드'라는 춤도 좋아해서 50대 중반까지도 아침에 일어나면 춤을 췄다고 해요.

 

엘리자베스 1세 시절의 춤 음악 몇 곡 준비했습니다.

https://youtu.be/8fQkSjeX7Vw

엘리자베스 1세가 총애했던 음악가 윌리엄 버드의 '볼타'


https://www.youtube.com/watch?v=tF7lBpQf4Tc

존 다울랜드가 작곡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갈리아드'


엘리자베스 여왕이 얼마나 춤을 사랑했는지는 60대 중반 노년의 여왕을 알현했던 어느 프랑스 외교관의 글에서도 드러납니다.      


궁녀들이 춤을 출 때면 여왕은 머리와 손발로 함께 리듬을 탔다.  

그러다 그들의 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에 호통을 쳤다.

의심의 여지없이, 여왕은 예술의 대가였다.      


나이가 들어, 춤을 추기보다는 구경하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여왕의 기준은 아마 더 엄격해졌던 모양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애인 러스트 백작과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했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학문적으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정치에 있어서도 노련했던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대관식이 있었던 463년 전 오늘, 1559년 1월 15일은 그녀의 통치 기간 45년 중에 가장 눈부시게 빛났던 날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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