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 바흐가 친형을 위해 쓴 음악
설 연휴 마지막 날,
오랜만에 친구 몇 명과 통화를 했는데 오늘 하루는 다 집에서 소박한 식사를 할 계획이더군요.
나이도 나이니만큼 그동안 각자 마주하게 된 변화들, 상실, 다시금 갖게 된 꿈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는데요.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달라도, 한 가지 마음만은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잘 되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
오늘 준비한 음악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길 떠나는 형을 위한 카프리치오>(Capriccio über die Abreise des sehr geschätzten Bruders) BWV992입니다.
평균율, 모음곡, 소나타... 이런 다소 딱딱한 제목 일색인 바흐의 작품 목록 중에서 이 작품은 제목부터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요. 바흐 작품 가운데 보기 드물게 표제적인 성격을 지닌 이 작품에는 바흐의 가족애, 따뜻한 인간미가 담겨 있습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길 떠나는 형’은 바흐보다 세 살 많은 형 요한 야콥인데요. 열 살에 양친을 모두 잃은 바흐가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의 집에서 자랄 때부터 의지를 많이 했던 형이 바로 요한 야콥이었습니다.
우애가 좋았던 바흐 형제...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각자 독립해 일자리를 구해야 했죠. 바흐도 큰형의 집을 떠나 아른슈타트의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을 시작했고요. 형 요한 야콥도 1704년 스웨덴의 궁정 음악가로 취직이 되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죠. 이에 바흐는 형의 송별식에서 직접 이 곡을 연주했다고 하는데요.
원래는 건반곡이지만 오늘은 두 대의 기타를 위해 편곡된 버전으로 준비했습니다.
10분 남짓한 이 곡은 전체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곡 Adagio ‘여행을 그만두게 하려는 친구들의 부드러운 말’
두 번째 곡 Andante ‘타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
세 번째 곡 Adagiosissimo ‘친구들의 공통된 탄식’
네 번째 곡 ‘친구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여기 모여 이별을 고한다’
다섯 번째 곡 Adagio poco ‘마부의 아리아’
여섯 번째 곡 ‘마부의 나팔을 모방한 푸가’
제목만 읽어도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보는 듯 생생한데요. 음악으로 만나보시죠.
타국으로 먼 길 떠나는 요한 야콥 바흐에게 동생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음악을 선물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여비며, 옷가지, 그리고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들도 바리바리 챙겨주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는데요. 그런 가족들의 애틋한 마음이 요한 야콥에겐 큰 힘이 되었겠죠?
내일부터 또 일상의 길 위에, 끝을 모르는 시간의 여정 위에 우리 모두 서게 되겠죠. 2022년 본격적인 출발을 앞둔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는 음악이 아니었나, 합니다. 연휴 마지막 날 편안하게 오후의 햇살 즐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