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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tha Mar 07. 2022

베를린의 보헤미아 음악 가족

3월 7일 (1786) 세상을 떠난 F. 벤다를 기억하며

236년 전 오늘,

1786년 3월 7일은

프로이센 궁정 음악가 프란츠 벤다(Franz Benda, 1709-1786)가 일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프란츠 벤다(Franz Benda)는 그의 출생지를 고려하면, 프란티셰크 벤다(František Benda)라고 부르는 게 맞습니다. 태어난 곳이 독일이 아니라, 지금의 체코 공화국, 북부 지역이기 때문인데요.


프란티셱, 프란츠 벤다는 음악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했고,  바이올리니스트로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일하다가 프라하를 거쳐 독일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왕자 신분이었던 프리드리히 2세의 눈에 들어 궁정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죠. 프리드리히 2세가 왕에 즉위한 뒤에는 그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부모와 형제, 자매들을 모두 프로이센으로 불러들이며 삶의 터전을 완전히 옮겼습니다.       


프리드리히 2세의 두터운 신임으로 궁정악단의 콘체르트 마이스터 직을 수행하면서 프로이센 궁정을 위한 많은 수의 작품을 남긴 프란츠 벤다의 음악을 한 곡 듣겠습니다. 20세기 보헤미아, 체코의 명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요제프 수크(Josef Suk)의 연주로 준비했습니다.


https://youtu.be/iszq3r248cc

요제프 수크가 연주하는 F. 벤다의 바이올린 곡 '카프리스'


오남매 중의 장남이었던 프란츠 벤다는 베를린으로 온 가족들을 든든히 책임졌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형제들, 소프라노 가수인 누이, 그리고 조카들까지도 궁정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죠. 이 많은 벤다 가족 중에 프란츠 벤다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게 되는 건 그의 동생 이지 안토닌 벤다(Jiří Antonín Benda), 독일 이름으로는 게오르크 안톤 벤다였습니다. 게오르크 안톤 벤다는 프리드리히 2세 밑에서 7년을 일했고 여기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나갔죠. 이탈리아에 2년 간 유학했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 고타, 함부르크, 비엔나 등에서 특히 극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날렸는데요. 그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형 F. 벤다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죠.


프란츠 벤다는 236년 전 오늘, 세상을 떠날 때까지 프리드리히 2세의 음악가로 있었습니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그가 프리드리히 2세와 함께한 수십 년 동안 연주한 협주곡이 자그마치 5만 곡이 넘는다고 하고요.

왕을 위해서 만든 플루트 음악도 상당수였죠. 벤다의 다른 음악들은 기회가 되면 또 소개해 드릴게요.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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