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작법론: 글을 써보겠다는, 아주 사소하고도 대담한 다짐
넘치면, 쓰게 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는 나의 질문을 우문으로 만들어버린 어느 선생님의 '현답'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욕망을
결코 오지 않는 '넘치는 순간'에 대한 기다림으로 무한히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글을 쓰는 손에서 영영 풀리지 않는 수갑이 되어 손에서 글을 놓게 만들고야 말았다.
알지 못하면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지 못하니 넘치지 못했으므로 나는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쓰지 않으면 결코 넘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넘치면 쓰게 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자격지심에 스스로 굴복하며 살았다. 이 자격지심은 때로는 글쓰기를 멀리하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고, 그보다 자주는 결코 '넘치지 못하는' 나의 앎과 지혜에 대한 또 하나의 자격지심으로 무럭무럭 자라곤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내 지난날 공부의 한줄기 미덕이란, 세상엔 도무지 내가 모르는 것들밖에 없다는 깨달음 뿐이었기에, 나는 아는 것이 없으니 글을 쓸 수도 없다는 사실은 무려 논리적으로까지 타당해 보였다.
나는 아는 게 없다. 그러니
내가 영영 나의 글을 쓸 수 없으리란 것은 결코 반박할 수 없는 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늘 나를 기대하게 하는 이 역접의 순간!),
산 정상에 오르는 것만큼이나 그 산을 오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면,
앎을 가지는 것만큼이나 그 앎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면
앎의 과정에 있는 사람의 글쓰기에도 작게나마 의미가 생길 수도 있겠다고
적지 않은 작법서-너도 글을 쓸 수 있어!-와 내밀한 에세이-내가 이렇게나 괜찮은/힘든 사람이야-를 핥고서야 글을 쓸 용기를 위한 용기 같은 것이 찔끔, 새어나오려 하는 것 같다.
그이들의 그이-다움이 충분히 그이다운 글을 쓰게 만들어 주는데,
나의 나-다움이라고 하여 글을 내놓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나의 나-다움,
무의미,
무의미에서마저 의미를 찾고자 아등바등하던, 나를 지탱해준 의미/또는 무의미를 잃어가는 지금
바로 지금에서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삶은, 찾을 수 없는 의미를 끝끝내 찾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같다.
그 사투가 혹여 의미있게 남는다면 그건, 오로지 기록에 의해서일 것이다.
적어도 나와 같은 혼란과 사투의 무의미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다시는 없도록
혼자만의 소명을 나는 다해볼 예정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더 공부하고, 공부하며 동시에 글을 쓰겠다는 나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