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사이즈

by 아가줌마

고민은 먼지 같아서 누구의 마음이건 언제나 항상 존재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먼지를 대하는 마음 주인의 태도일 뿐. 하지만 작은 태도의 차이가 우리의 인생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마음의 작은 창문을 통해 아주 작은 먼지만 드나든다. 어른들은 자세히 봐야지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이지만 그 마음의 주인에겐 이런 작은 먼지도 처음인지라, 한둘씩 쌓이다 보면 경기, 트라우마 같은 정서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위험하다. 그러니 보호자가 깃털 같은 곱고 미세한 먼지털이로 자주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볍게 털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청소년기에 들어가면 마음이라는 방에 갑자기 문이 생기게 된다. 문이 생기게 되면서 이제는 누구나 그 문을 열고 들어와 먼지는 속절없이 많아지게 된다. 스스로 그 문이 생겼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 문을 잠궈 버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간혹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열어 놓고 휙 나가버리기도 한다. 이 때 갑자기 먼지 덩어리가 통째로 들어와 난데없이 숨을 턱 막히게 한다. 그제서야 더듬더듬 문을 찾아 뒷발로 휙 문을 차보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문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우리는 드디어 문의 정체를 알게 된다. 처음에는 청소를 안했나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다가도 먼지가 너무 많아 목구멍을 꽉 막고 질식할 쯤 되면, 반쯤 열려버린 문을 기어코 찾아내기 마련이다. 그제야 어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문을 닫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어른의 문은 안타깝게도 아귀가 꼭 맞지 않아 아무리 열심히 닫아놓아도 어느샌가 스윽, 열려버린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그제까지 쌓여있었던 오래된 먼지들을 찾아내 떨어내거나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하려고 매일 명상 빗자루를 부지런히 꺼내든다.


하지만 쌓인 먼지를 아무리 열심히 청소해도 매일같이 쏟아지는 시커먼 먼지더미를 막아내는 건 역부족이다. 황사가 몰아칠 때는 아예 문을 닫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바람에 문이 열리지 않게 온몸으로 문을 붙들고 막아야 한다. 그리고는 황사가 지나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자. 문을 붙잡느라 손이 없어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눈과 시간이 비어 있으니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으니 그리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미처 눈이 가지 않았던 구석 자리도 자세히 살펴보고 얼룩이 발견되면 무슨 얼룩이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바람이 멈춰 여유가 생기면 마음의 배치도 다시 새롭게 해 볼 계획을 세워보자. 깔끔하고 예쁘게 변할 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문을 닫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낯선 느낌이 그리 싫지 않다고 느낄 때, 그제야 황사가 잠잠해진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면 다음 단계는 아예 황사가 오는 것 자체를 피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불어오는 작은 바람의 냄새만으로도 그 바람이 황사를 품고 있는 것인지 그냥 비바람인지 딱 알아채고 즉시 대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불에 데여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생존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서 딱히 말로 비법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여하튼 이렇게 이미 먼지가 마음에 너무 많아져 버린 어른들도 살아갈 방도는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방도를 터득한 어른으로서 최근에 터득한 또 다른 방도를 하나 공개하겠다. 알고보니 이 마음이라는 것은 비워져 놓으면 어떻게든 먼지가 들어가기 마련인지라 청소하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나는 시커멓고 무거운 먼지들이 쌓이기 전에 그 공간을 작고 뽀송한 먼지들을 채우기로 했다. 예를 들면, 오늘은 무슨 색 옷을 입을까? 저 사람에게 무슨 칭찬을 해주면 기분이 좋을까? 날씨가 너무 좋으니 어디로 산책을 갈까? 오늘의 간식은 붕어빵이 좋을까 크림빵이 좋을까? 등 이런 뽀송한 먼지들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커져서 마음을 꽉 채우고 오래된 먼지를 밀어내 버려 시커멓고 무거운 먼지가 이미 꽉 차버린 내 마음에 들어 올 여지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볍고, 가장 뽀송한 먼지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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