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나이를 먹도록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그렇다고 화려한 싱글은 커녕 초라하고 어딜 보나 시들시들해진 싱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부터 독립을 꿈꿨으나 독립은 고사하고 용돈을 마련하기도 급급했던, 야망과 현실의 간극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컸던 시절을 거쳐 그 후로는 독립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헤엄을 쳐왔다. 그러는 동안 뭉텅이 같은 시간은 흘렀고 이제는 좀 멀리 왔으려나 싶어 이제야 몸에 묻은 물과 찌꺼기를 털어내 보았다. 툭툭. 내 발 밑의 모래를 쓸어보니 여기는 우리집, 정확히는 부모님 집이었다. 나는 출발지점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유난히 독립심이 강했지만 불행히도 우리집은 나의 독립심을 전혀 받쳐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무작정 독립하기 보다는 학교 졸업과 커리어가 내 인생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은 알만큼은 머리가 돌아갔기에 이십대는 독립에 대한 야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삼십대에 커리어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공부를 계속했고 유학을 가는 바람에 정착이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나의 삼십대 삶은 떠다니는 삶, 그 자체였다. 직장을 따라, 학교를 따라, 둥둥둥 떠다니느라 많은 걸 짊어질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친구도 연인도 삶의 기반도 무거워 지면 절절 매다가 하나씩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짐을 내려놓은 후에야 나는 그 힘으로 다시 조금은 봉긋, 위로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
삼심대의 후반,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의 바구니는 비워진 대신 해외의 자유로운 삶의 바구니가 채워졌다. 오롯이 스스로의 욕구와 필요에 의해 내 삶을 만들어가는 즐거움. 드디어 고대하던 온건한 독립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독립은 너무나 비쌌다. 나는 독립을 위해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었고, 미래의 더욱 완벽하고 빛나는 독립을 위해 공부를 더더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 싫었지만 내가 포기하는 순간, 아쉬울 것 없는 독립은 언제든지 작별을 고하고 쌩하고 가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야박한 독립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채 마흔 중반까지 일견 즐거운 것 같으나 알고 보면 가시밭길이었던 그 길을 피를 질질 흘리며 걸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길 끝에서 피흘리고 쓰러진 나를 엄마가 발견하고는 말없이 거둬갔다. 상처는 꽁꽁 싸매졌고 나는 죽은 듯이 누워 엄마가 주는 밥상을 매끼 마주했다. 독립의 노예였던 나는 이 동거와 밥상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한동안 눈길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이 모든 걸 보고 있던 독립은 아니나 다를까 나를 찾아와 비웃었다. 그 후로도 독립은 계속해서 찾아왔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조롱했다. 내 나이와 내 처지를 비웃는 것 뿐 아니라 내 텅빈 지갑을 쿡쿡 찔러대면서 그동안 공부 시킨 게 아깝다며 한심하게 혀를 차며 돌아갔다. 하지만 너무나 맞는 말이라 나는 어쩔 줄 몰라 그냥 고개만 푹 숙였다. 덕분에 매끼 뜨듯한 엄마 밥을 먹어도 살은 조금도 찌지 않았다.
독립이 또 찾아왔다. 이번엔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이 사람들을 좀 보라면서. 너랑 비슷한 처지였던 이들이 지금 어떤지 좀 보고 반성하라면서. 나는 흘깃 그들을 보았다. 그나마 그사이 조금씩 펴졌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전보다도 더 심하게 홱 구겨져 버렸다.
구겨지고 구겨지다 보면 종이는 마침내 납작해진다. 내게도 더 구겨질 마음이 남아있지 않던 어느 날, 독립이 또 나를 찾아와 들쑤시자 문득 오기가 생겼다. 나는 움찔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부라리면서 독립에게 따지듯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린 이제 끝이야. 나는 이제 너한테 못 간다고! 근데 그래도 나는 잘 살 거야. 네가 없다고 해서 더 이상은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너도 이제 그만 날 포기해!” 나의 일격을 받은 독립은 우물쭈물하더니 화가 나서 돌아가 버렸다. 그 후로도 여러 번 독립은 길 끝에서 몰래 보거나 내 근처로 쓱 다가왔지만 나는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보란 듯이 밥도 더 많이 퍼서 우걱우걱 먹었고 다른 사람들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즐거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모습에 독립은 결국 터덜터덜 힘없이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그 뒷모습이 짠하긴 하다. 언젠가 독립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영영 못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우린 한 때 열렬히 사랑했었고 함께한 아름다운 기억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렇지만 모름지기 현재의 사랑을 사랑하는 게 여자의 사랑이라고 했던가.
그러니 독립, 너무 속상해 하지는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