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하고 막막한
2024년 11월 8일.
보리와 만난 지 15년 된 날, 다이소에서 숫자 초를 사 와서 기념사진을 하나 남겼다.
15년 전 비 오는 11월 밤, 내 인생에 들어온 한 달 남짓 된 아기고양이였던 보리.
보리는 내게 온 후 8년 5개월 동안은 누나 고양이 '애기'를 성가시게 구는 개구쟁이 막둥이였고, 애기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6년 8개월을 향해가는 지금까지 나라는 한 인간을 이 지구의 땅 위에 접붙여주는, 유일한 (현)가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작년에 고양이들의 고질적인 질환 중 하나인 위장관질환으로 내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던 보리는 올해 들어 식욕촉진제와 영양제를 꾸준히 먹이자 구토 횟수가 줄고 체중도 조금 늘었다.
2024년 10월 기준 7.5킬로그램을 찍은 보리의 몸무게는 이제 앞으로는 하향곡선을 그릴 날만 남았겠지만, 그래도 아직 치명적인 질병 없이 15세를 갓 넘은 노령 고양이의 나날들을 살아내 주고 있다, 대견하게도.
애기가 곁에 있던 14년 9개월, 그중에서도 애기, 보리와 함께 했던 8년 5개월,
그리고 애기가 떠난 후 지금까지 보리와 단둘이 지내고 있는 6년 n개월.
각 시절의 삶의 색채는 사뭇 다르게 회상된다.
사람 자녀가 있었다면 '첫째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둘째가 중학교 다닐 때' 이런 식으로 회상하겠지만, 동물 자녀(?)만 있었다 보니, '애기와 살 때, 애기와 보리와 함께 살 때, 애기가 떠나고 난 후...' 이런 식으로 내 삶의 페이지들을 단락 짓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고양이들은, 내 삶의 변곡점의 어떤 기준점이 되어준다.
보리를 만난 후 15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실패한 예술가를 자처하던 삶을 과거라는 하수구로 마침내 완전히 흘려보냈고, 마치 과거를 청산한 다중인격자인 양 예전과는 썩 모양새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첫 고양이 애기가 떠난 후 고통스러운 펫로스증후군을 겪으면서 나의 내면은 또 한 번 다른 기후로 변했다.
이전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이제 내게 남은 삶의 마지막 챕터는 '보리가 떠난 후'가 될 것이다.
그 어떤 상상도 부질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지만, 보리마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될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상상은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지곤 한다. 곧 맞이하게 될 갱년기로 인한 우울감과 가속화될 육체 노화의 참담함을 매 순간 직면하는 시기가, 보리를 보낸 후의 시기와 겹치겠구나를 예측하노라면 짙은 안개 같은 공포가 엄습할 때가 있다.
모두가 떠난 이후의 삶에 대하여, 모두가 떠나고 내 곁엔 아무도 없는 삶에 대하여, 짐작조차 하질 못하겠기 때문이다.
짐작조차 안 되는 이 공포는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아득한 낭떠러지이자, 그게 정확히 뭔지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도 않는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처럼 실체도 떠오르지 않는, 죽는 날까지 이어질 슬픔 그 자체다.
나보다 더 오래 살 가족 없이, 나는 정말 혼자 남겠구나. 집에 와도 아무도 없겠구나.
혼자서 너희들을 다시 만나러 남은 삶을 견뎌야 하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노령의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한 인간인 나의 예기애도는 어쩌면 '무망감' 비스무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떤 상상도 부질없다는 걸 상기하며, 코앞으로 닥쳐온 가까운 미래의 아득한 공포와 슬픔과 무망감의 안갯속을 헤매던 발걸음을 뚝 멈추고, 현재, 지금 여기로 돌아온다.
미래라는, 예기애도라는 안개가 내 온몸을 짓누를 것 같으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여기로 와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내 곁을 떠난 후 나는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울기만 하는 폐인이 될지도 모르고, 아니면 멀쩡히 잘 살지도 모른다.
어쩌면 치료가 불가능한 큰 병에 걸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골골거리면서도 또 어찌어찌 연명할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많은 이들과 슬픈 이별을 할 것이고, 이별 후에도 오늘은 또 어떤 반찬을 해먹을지 고민하며 새 밥을 지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에는 이따위 삶이 어쩌고 저쩌고 불평을 해대겠지만, 아주 가끔 어떤 날엔 잔잔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평온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정신 차리고 되돌아온 나의 유일한 현실, '오늘'의 보리는 토실토실한 분홍 뱃살을 푸우푸우 움직거리며 낮잠을 잤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집 앞 예쁜 카페에 가서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에세이를 천천히 읽었다.
그러니 예정된 이별과 상실을 앞두고 너무 무서울 때면, 그저 가만히 현재를 응시해야 한다.
해가 나면 안개가 또 걷힐 것을 알듯이, 그냥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