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거울이 있던 자리

by KAKTUS

오늘이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자정이다

이사의 다른 이름은 이별이다


옮겨가는 것이 이렇게 선명히 드러나는 일이 있을까

생애에는 어디로부터 옮겨오고 어딘가로 옮겨가는 일이 분명치 않은데

이사는 사소한 물건까지 챙겨 옮겨가는 일이라 왠지 도도록하기만 하다


참빗으로 머리를 넘겨 빗은 것처럼 정갈해진 방과 함께 있다


한쪽 벽에 못 하나가 박혀 있는데, 그 자리는 거울이 있던 자리다 그곳은 유독 메마르다

이젠 거울이 걸려 있지 않음에도 나는 줄곧 그 자리를 쳐다본다

내가 비치지 않음을 알고 조금 놀란 후에, 깨닫는다

그곳에 더 이상 거울이 있지 않음을


거울이 없는 자리가 마음에 파문을 인다

거울에는 나의 젊은 날의 달이 떠서 미움이 차오르고 이울고 했었는데

나는 거울에 비친 눈을 볼 수가 없고, 거울은 나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볼 수가 없다

나는 고요로 마음을 걸어 와락 북받치는 달빛의 슬픔을 막아본다


나는 숱하게 어리석었다 그래도 눈이 깊어가면서 어리석을 수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거울이 있던 자리 뒤로 내가 쌓여있어 다시 시선을 닿다가 이제 그만 옮겨 가기로 한다


몇 번이나 박힌 못을 빼고 갈까 하다가 남겨 두기로 한다

다음 누군가는 그 자리에 무엇을 둘까

그에게도 그 자리엔 거울이 걸릴까

그 역시, 한참을 거울 앞에 서서 또한번 다른 시간으로 옮겨졌음을 애달아할까


이것이 이 집에서 끝으로 쓰는 나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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