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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KTUS Apr 11. 2016

남극의 오후

우리는 죽어가는 것일까, 죽으러 가는 것일까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물음이 입밖에 난 것은 

한 냄비, 스프 때문이었다


지나간 모든 것이 스프를 저어내는 일 같았어도

내게 이토록 미욱한 마음이 눌어 붙었을까

젓개로 깊숙이 스프의 수심을 건드려본다


스프가 엉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남극에 도착하였다

극단 사이 어딘가에 머무르다가 나의 생활이 

곤두박질 쳐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처음의 간극은 내가 계절의 발목뼈를 살짝 삐끗한 데서 생겨났다

내부의 시계가 어긋난 것들은 모두 극으로 간다고 하였다


생이 났을 때 죽음도 태어났으므로 

존재의 위치를 물으면 늘 극 사이의 어딘가이다

죽음을 잊고 사는 것은 쉬이 경유지의 이름을 잊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남극에 도달하는 것이다

죽음을 갈증하여 생을 향하여 호젓이 스프를 끓이는 것이다

생을 건널수록 죽음에 다다랐으므로 

생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생, 자신 뿐이었다

냄비 속 느린 회전 속에서 극단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때, 봄해 앞에 펭귄의 그림자가 졌다면 당신은 믿을까


뒤뚱거리며 걸어와 젓개를 빼앗아 스프를 완성하고

나를 식탁에 앉히고 한 그릇의 봄을 내왔다면 이 또한 믿을까

나는 펭귄과 마주하여 스프를 떠 먹었다

남극에도 봄이 오고 있었고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였지만 나는 가스불 앞에서 얼음이 녹아가는 펭귄의 속눈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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