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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KTUS Jul 01. 2015

나는 지금 막

여름의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는 수 만개의 이파리로 흔들린다

내게도 나무가 자란 일 있었다
그래, 내게도 누군가 여름의 나무처럼 번지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기대는 이지러지고 나는 멍하니 내 속의 나무를 들추어 본다
가지를 헤집으면 나는 바람조차 걸리지 않는 나목이 되어있다

너와 나 숲을 꿈꾸며 흠씬 비를 맞던 날들을 생각한다
장대비가 쏟아져 잎마다 너의 물이 들어버리곤 했던 날들
퍼붓는 빗속에도 서로를 갈구하는 것으로 목이 마르던 영혼들
그때 우리는 하루가 지나면 더욱 여름에 가있었다

여름의 나무를 바라본다, 나목을 가만히 그날들에 기대어 본다
귀에서 물 한 방울이 흘러나온다
나의 생활의 감각은 모두 이 한 방울에 갇혀있었던 것일까
나는 여름의 나무 앞에서 얼마나 먹먹해졌던가

귓물은 참 따뜻하기도 해서 나는 그만 놀라고야 만다
넌 영영 한 방울로도 남지 않을 것 같았는데 끝내 흘러주었고
그래, 나는 지금 막 내 우스운 가벼움이 무거워져 주저앉으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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