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로마 거리에는 정겨운 길거리 음식이 있다. 고소한 탄내를 풍기는, 우리들에게는 옛 간식이 되어버린 군밤이다. 군밤을 만나면 무시하는 게 보통의 반응이다. 아는 맛이고 특별히 당기는 맛도 아니니까. 그 군밤을 내 돈 주고 사먹을 줄이야 그때는 몰랐다. 하루 이틀 지나쳤던 군밤이 눈에 들어온 건 삼일째 저녁이었다.
로마는 밤이 되어도 밝지 않다. 심지어 쇼핑 중심가인 센트럴도 마찬가지다. 좋지 않은 시력에 안경을 쓰지 않은 나의 경험이 그리 믿을 만하다고는 말 못하지만, 어찌되었던 거리 모퉁이부터 어둠에 잠길 때쯤 시야를 파고드는 영롱한 빛이 있었으니 고흐의 노란색처럼 아주 선명한 노란 빛을 발하는 군밤의 속살이었다.
카페에 다녀온 후인에다 곧 저녁 시간이기에 별 생각 없던 군밤은 이것이 로마의 유일한 발랄함이라는 듯 빛났다. 그렇게 별맛 아닌 군밤을 툭툭 껍질을 벗겨내 까먹으며 골목과 차로 사이를 오가는데 불현듯 그 순간이 뱃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유럽의 역사를 통째로 삼킨 것 같은 로마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독특한 광경을 선사하긴 했지만 다시 오고 싶은 여행지라는 느낌은 사실 들지 않았다. 놀라운 미식의 경험도 다시 이곳으로 끌어들일 요인까지는 못 됐다. 그저 그 순간 즐거운 것 외에 아무 추억을 새기지 못했는데 의외로 군밤이 그것을 해주었다.
시간을 추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나는 종종 아주 익숙한 것을 통해 그 시간을 깊게 새기곤 한다. 이번 로마에서도 그 방식이 작동한 셈이다. 판테온,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바티칸은 모두 경험으로 스쳐지나가고, 오랫동안 기억에 잠길 로마의 시간은 쌀쌀한 저녁, 탁해진 시야 사이로 선명한 노란 속살을 찾아 먹던 군밤으로 새겨졌다.